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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집주인도, 중개인도, 정부도 못 믿는 ‘아수라’ 빌라전세시장

입력 | 2023-02-14 00:00:00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난 전세사기 여파로 연립·다세대주택(빌라) 임대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전세 대신 월세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월세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잇따르는 전세사기에 정부도, 집주인도, 공인중개사도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아파트보다 저렴해 많은 서민에게 주거를 제공해온 빌라 임대차 시장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최근 3개월 동안 이뤄진 수도권 빌라 임대차 계약 10건 중 1건은 2년 전엔 전세로 계약됐다가 이번에 월세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이른바 ‘빌라왕’ 전세사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 뒤 월세로의 전환이 두드러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수도권 빌라 전세 거래량은 전달보다 18%나 줄었다. 전세사기 걱정에 월세만 찾는 사람들이 늘고, 월세 보증금조차 불안해 ‘주세(週貰)’까지 등장할 정도다.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전제로 하는 전세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계약 전에 꼼꼼히 확인했는데 사기를 피할 수 없었던 사례를 보면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등기부등본도, 감정평가사의 감정가격도, 공인중개사의 설명도 믿을 수 없고 최후의 보루였던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렇다 보니 선량한 임대인조차 잠재적 ‘사기꾼’으로 의심받을 정도다. 집주인이 돈을 돌려줄 여력이 있는지 재직증명서와 납세증명서를 요구하는 세입자들도 있다고 한다.

전세는 목돈을 모아 내 집 마련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다. 빌라 전세시장이 무너지고 월세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면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수요자들이 안심하고 전세를 구하도록 하려면 ‘조직적 전세사기만큼은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갖고 지속적인 단속을 해나가야 한다. 집주인 동의 없이도 악성 임대인 여부, 세금 체납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조속히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 임대차 시장이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화돼야 서민 주거 안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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