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기부 장관 인터뷰 AI는 거스를 수 없는 디지털 대세… 전력소모량 줄인 AI반도체가 핵심 2030년까지 美수준 기술력 목표… 한국의 미래 먹거리 기반 닦을것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치열한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전력 소모를 줄인 반도체 기술로 한국이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분야 석학인 이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해 과기정통부를 이끌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은 전력 소모량을 줄인 반도체 기술입니다. 한국이 쌓은 반도체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8일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글로벌 AI 기술 경쟁 시대의 대응 전략을 밝혔다. 이 장관은 대규모 연산을 적은 전력 소모량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게 AI 반도체 기술의 핵심인 만큼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설명했다.
●AI로 늘어날 전력 소비, 한국 기술로 해결책 마련
AI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는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다. 엔비디아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는 전력 소모량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이 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강점을 보이는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에 계산 기능까지 넣고 최적화하면 전력 소모량이 적은 칩을 만들 수 있다”며 “나름대로 기술적인 근거를 갖고 이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모은 미국 오픈AI의 ‘챗GPT’ 같은 AI 서비스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한 뒤 이를 통해 추론한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학습 데이터를 단시간에 받아들이고 처리하려면 기존 처리장치와 다른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 장관은 “디지털 세상에서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력 소비가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한국이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내다 지난해 5월부터 과기정통부를 이끌고 있으며 반도체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약한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술 향상을 위해 이 장관이 직접 국내외 기업 경영진을 만나며 협업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소프트웨어까지 고도화하면 미국 빅테크도 탐낼 만한 AI 반도체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2030년까지 8262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K클라우드 전략’을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2030년 AI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력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목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AI 반도체 기술력을 100으로 볼 때 한국은 89.2 수준이다. 이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 될 ICT 강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들어 과학·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하고 나서며 과기정통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연초 과학기술인·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7년 만에 참석했다. 지난해 9월 캐나다 순방 때는 AI 기술의 글로벌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선 양자기술 석학들을 만났다. 귀국 직후엔 AI, 우주, 양자, 바이오 분야의 젊은 과학자들을 대통령실 청사에 초대했다.과기정통부는 올해 상반기(1∼6월)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특별법엔 청장이 외부 전문가에게 일반 공무원보다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내용도 담긴다. 이 장관은 “우주 산업 분야에서 정책 전문성을 가진 과기정통부와 함께 일을 시작하고 이후에 적합한 정부 조직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8GHz(기가헤르츠) 대역의 5세대(5G) 서비스 구축을 위해 ‘제4 이동통신사’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선 “확실한 혜택을 주겠다”며 추진 의지를 보였다. 양자기술 육성 전략과 발전 방향은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장관 재임 중 꼭 마무리했으면 하는 정책 과제’에 대한 질문엔 말을 아꼈다. 그는 “특정 장관이 관심을 가진 분야라고 딱지가 붙으면 나중엔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며 “그저 한국의 먼 미래 먹거리의 기반을 닦고 체질 개선에 이바지하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