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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거목’ 한 스승 아래… 제자들 4가지 세계를 빚어냈다

입력 | 2023-02-14 03:00:00

1950~54년 김종영의 제자 4인방
작품 모아 종로서 ‘분화’전 열어
초창기 교육이 낳은 작품 보여줘
김종영미술관 20년 역사도 전시



최종태의 나무 조각 작품 ‘서 있는 사람’(2016년). 김종영미술관 제공


광복 이후 초창기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으로부터 지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아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서울대 미대가 창설된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각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을 선보인다.

스승은 어떤 철학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쳤을까.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유고집에서 김종영 선생은 예술 교육은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만 해야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서울대 재학 시기는 6·25전쟁 기간과 겹친다. 교수진과 직원들은 피란 중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만들어 수업하다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 수가 적었기에 제자들은 일대일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

‘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작업해 선선과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년)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년) 등이 전시됐다.

왼쪽 사진부터 최만린의 1993년 브론즈 조각 ‘093-2’, 송영수의 1950년대 드로잉 ‘무제’, 최의순의 2020년 석고 조각 ‘020-4’. 성북구립미술관·포항시립미술관·김종영미술관 제공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 조각가 박승구(1919∼1995)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던 최만린의 작품 중에선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작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의 작품은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최종태, 최의순 작가는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때 만든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이라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 있던 현판에 새겨진 글자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열린다.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