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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진우]강제징용 배상 합의 앞서 국민 공감부터 얻어야

입력 | 2023-02-14 03:00:00

신진우 정치부 차장


2015년 12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불가역하게 해결됐음을 확인한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이 합의는 최종적이지도 불가역적이지도 못했다. 애매한 문구의 해석을 놓고 양국은 수시로 충돌했다. 때론 합의문이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합의를 누더기로 만든 데는 위안부 합의 정신 자체에 반하는 언행을 일삼은 일본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우리 정부 역시 책임에서 비켜 갈 수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가 ‘공식적 합의’로 인정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여 양국 갈등을 증폭시켰다.

시간이 흐른 후, 외교가에선 위안부 합의가 어정쩡한 상태로 지지를 받지 못한 건 결국 이 합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협상을 전후해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려는 정부 노력이 부족했단 얘기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합의 직후 피해자와 국민의 이해를 당부한다는 짤막한 메시지만 냈다. 일본 역시 진정성 있게 자국 국민들에게 이 합의의 취지를 설명하기보단, 눈치 보며 해명하는 데 급급했다.

위안부 합의 발표 후 7년이 흐른 지금, 한일 정부는 이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관측까지 나온다.

위안부 협상 때처럼 피해자 설득 노력이 부족한 건 아쉽지만 일단 우리 정부는 피해자·유족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협의 경과를 상세하게 설명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피해자 설득 노력의 진정성은 더 지켜본 뒤 판단할 문제로 보인다.

사실 더 우려스러운 지점은 따로 있다. 한일 정부가 양국 관계 개선이 ‘왜’ 중요한지, 이 근본적인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설득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족한 게 맞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본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일본의 발전 경로를 비슷하게 밟아간 만큼 양국은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많다. 경제·산업·문화적으로 양국은 대체 보완 가능한 요소도 많다”고 했다. 심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중국에 휘둘리지 않고,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려면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관계 강화는 필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가중된 만큼 한일 안보협력의 중요성도 커졌다. 일본 입장에선 자국 관광산업에서 한국의 비중이 커진 만큼 또 우리와의 관계 개선이 절실해졌다. 이런 각론들을 떠나, 현안 해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가장 큰 필요이자 당위다.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란 시한폭탄이 터지면 양국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왜’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어떻게’는 공허하게 들리게 마련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밀실 합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쉽다. 강제징용 배상·사과 방식만 고민할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한일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이 왜 필요한가”,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부터 자국 국민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야 한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