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1년] 주부-무용수 등 ‘전장 밖 전사’ 의료품 보내고 전통문화 알려
3일 서울 마포구 성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우크라이나 전통 복장을 입은 우크라이나인 율리야 전 씨, 이고르 씨, 율리야 주크 씨(왼쪽부터)가 러시아 규탄 시위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우크라이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3일 서울 마포구 성니콜라스 대성당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 울리야 주크 씨(35)는 한국인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했다. 무용수였던 주크 씨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전통춤 ‘호팍’(전사의 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열린 세계문화축제에서 동료들과 함께 호팍을 춰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하나’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은 틀렸다”며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 스스로를 ‘전장 밖 전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고통받는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두 아들의 엄마인 류드밀라 페트렌코 씨(42)는 8일 거즈 항생제 같은 의료용품을 가득 담은 무게 23kg짜리 가방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이제껏 1000만 원 넘는 비용 대부분은 자신이 냈다. 예전에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 도자기와 액세서리까지 중고품 교환 판매 사이트에 올려 판매했다. 그는 “눈물이 날 만큼 힘든 순간의 연속이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나라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우크라이나인들 모두 “싸우기 위해 울 시간조차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최근 캐나다로 옮겨간 율리야 곤차렌코 씨(30)는 새로 거주하게 된 곳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난민시설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곤차렌코 씨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어디에 있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