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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뒤 백제왕씨 여성들, 日 건너가 일왕 아이 낳기도”

입력 | 2023-02-16 03:00:00

최은영 충남역사문화硏 연구원
나라-헤이안 시대 18명 삶 분석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시에 자리한 백제사와 나란히 붙어 있는 백제왕신사. 백제 멸망(660년) 당시 일본에서 살고 있었다고 알려진 백제 선광왕을 모시고 있다. 동아일보DB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벌써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백옥처럼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간무(桓武) 일왕(재위 781∼806년)은 수도를 나라(奈良)에서 헤이안(平安·현 교토)으로 옮긴 후 795년 곡연(曲宴·왕이 궁중에서 여는 작은 잔치)을 열고 이 같은 의미가 담긴 고가(古歌)를 읊었다고 한다. 백제 멸망(660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의자왕(재위 641∼660년)의 후손인 백제왕씨 일족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 확인되는 여성인 명신을 향한 것이었다.

770년 일본 정사(正史)에 처음 등장하는 명신은 간무 일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간무 일왕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재위 462∼523년)의 후손이다. 명신은 일왕을 가까이 모시는 여성 관인 내시사(內侍司)의 장관 격인 상시(尙侍)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은영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술지 한일관계사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 ‘고대 일본 도왜계(渡倭系) 씨족 여성의 동향-백제왕씨(百濟王氏)를 중심으로’에서 일본 나라(710∼794년)·헤이안(794∼887년) 시대 백제왕씨 출신 여성 18명의 동향을 분석했다. 역대 왕을 중심으로 담은 일본 정사인 육국사(六國史)를 토대로 백제왕씨 출신 여성들이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 속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명신은 나라·헤이안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백제왕씨 여성이다. 그는 후지와라(藤原) 출신의 우의정 격인 우대신과 결혼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후궁(황후 등이 사는 공간)에 들어가 여성 관인으로 일했다. 간무 일왕이 백제왕씨를 자신의 외척으로 선언한 뒤 백제왕씨 여성들의 활동은 더 두드러졌다. 최 연구원은 “간무 일왕이 혈통과 출신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외가 일족에 관위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모계의 신분을 높이려 했다”고 했다.

일왕의 외척으로 선언된 백제왕씨 일족 여성들은 헤이안시대 초기 여성 관원으로 활동하거나 후궁이 돼 일왕의 아이를 낳았다. 사가(嵯峨) 일왕(재위 809∼823년)의 여어(후궁)였던 경명은 일왕의 아이를 낳았고, 사망한 후 백제왕씨 일족 중 가장 높은 위계인 종1위를 받았다. 최 연구원은 “간무 일왕부터 닌묘(仁明) 일왕(재위 833∼850년) 시기까지 백제왕씨 여성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면서 “백제왕씨는 헤이안 시대 중기부터는 후지와라 가문의 득세 등 대내외 변화로 인해 쇠퇴했지만 일본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에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