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블랙홀’ 된 의대] “의과학자 키워야 팬데믹도 대비” 韓, 연간 최소 150명 육성 필요 美 지원 프로그램, 노벨상 15명 배출
1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 유정우 연구원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유 씨는 이 학교 의대에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을 통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 신경외과 전문의 유정우 씨(36)는 매일 오전 9시 병원이 아닌 이곳 2층 실험실로 출근한다. 총 11층의 ABMRC 건물 안에는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 초원심분리기, 동물실험실 등이 있다.
유 씨는 연세대 의대에서 전일제로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전공을 살려 희귀 신경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다. 내년에는 병원으로 돌아가 임상과 연구를 병행할 예정이다.
같은 학교 내과 전문의 성민동 씨(36)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패혈증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성 씨는 “중환자실로 돌아가면 연구로 쌓은 데이터로 환자를 진료하고자 한다”며 “의학도 다양한 분야와 협력하면서 발전한다. 의사과학자는 그 중간 다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사과학자를 확대하기 위해 2019년부터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부생과 전공의에게는 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수련 후 전일제 박사과정을 지원한다. 연간 85명이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이 외에 지난해부터 의사과학자가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신진의사과학자 연구지원 사업’도 시작됐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섰다. 미국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1964년부터 학부, 전공의, 전문의를 아우르는 연구지원 프로그램과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연간 500명 규모의 의사과학자가 신규로 배출된다.
MSTP를 통해 의사과학자가 된 사람 중 15명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총괄 조직에서는 바이오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8억4000만 달러(약 1조78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연간 180만 달러(약 23억 원) 규모의 의사과학자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뒤를 이을 또 다른 미지의 신종 감염병, 이른바 ‘디지즈 X(Disease X)’에 대비하고,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의학과 기초의학, 이학, 공학 등을 아우르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핵심 인재가 의사과학자인데 연간 최소 150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융합형 의사과학자 병역 특례 도입 등을 통해 전문연구요원을 증원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