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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산업은 경제 가치 높아… 기술퇴보 부르는 최저가 입찰제 바꿔야

입력 | 2023-02-17 03:00:00

[강소기업이 미래다]국내 철도차량 발주 문제점과 과제
기술보다 가격 우선인 입찰제도… 역량 부족으로 안전 문제 잇따라
낙찰자, 저가 해외 부품 사용으로 국내 부품시장의 위축은 물론
국민 전체의 안전 위협할수도




게티이미지코리아

철도산업은 탄소중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차세대 국가전략사업으로서 투자확대와 지속성장이 기대되는 친환경, 고성장 산업이다. 해외 진출이 유망해 산업·경제적 가치가 높은 만큼 철도산업의 지속적인 발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계약법을 근간으로 하는 철도차량 구매입찰제도가 사실상 최저가 낙찰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계약자의 기술능력과 계약이행능력의 부족, 저가 낙찰을 만회하기 위한 저가 부품 사용이 계속되어 기술 발전의 퇴보와 더불어 부품업체의 도산, 만성 납기 지연, 납품 후 잦은 고장 발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실정과 무관하게 현행법에 따른 국가철도공단의 사업 범위는 철도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데 편중되어 있어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좀 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발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2일, 25일에 코레일과 SR은 1조5000억 원 규모의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구매 입찰을 공고했다. EMU-320 구매를 위해 공동수급 계약방식(컨소시엄 방식)으로 공고가 난 것이다. 3월 중 낙찰 예정으로 진행 중이나 입찰 시작 전부터 난항을 겪으며 입찰 방식으로 인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기술·가격 분리입찰, 최저가 낙찰로 이어져


현재 국내 철도차량의 입찰은 ‘2단계 기술·가격 분리 동시 입찰’ 방식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일정 수준의 기술평가 점수를 통과하면 가격 비교만을 통해 최저가를 투찰한 업체가 수주하는 형태다. 이로 인해 설계, 제작 능력 및 이미 계약된 물량의 생산으로 인한 입찰물량 생산 여력의 부족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업체라도 최저가로 내면 낙찰이 되는 것이다. 수주 업체는 저가 낙찰의 피해를 저가의 해외부품 사용, 생산인력의 재하청 등으로 만회하고 있어 내수시장 의존도가 큰 한국 철도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가 투찰로 인해 제작사뿐만 아니라 철도차량 부품사에도 부담이 전가되면서 영세한 부품 제작사는 줄도산을 맞고 있다.

국내 철도차량 부품사의 상황은 심각하다. 국내 약 195개의 철도차량 부품사 중 종업원 수 5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 84%를 차지할 만큼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고, 중국산 부품 등 저가 경쟁에 밀려 철도차량 부품의 무역수지 적자도 심화되는 추세다. 국내 철도부품 산업만 따져보면 2020년 기준으로 약 91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철도 차량부품시장 규모는 2021년 약 4300억 원으로 추산되는데 내수시장의 규모는 부품업체들이 기업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사가 저가로 계약한 금액 내에서 철도차량을 제작하기 위해 저가의 해외 부품을 사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내 부품 업체를 도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행들이 결국엔 제작 및 납기 지연, 품질 불량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낮은 가격을 투찰한 제작사가 수주하는 2단계 기술·가격 분리 입찰제도를 폐지하고 설계점수에 높은 비중을 두고 가격과 기술을 동시에 평가하는 종합평가제도의 운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기술중심 입찰제를 통해 제작사를 선정하고 있으며 유지보수와 부품공급 권한을 함께 묶어서 발주하는 턴키 입찰제도 자리 잡고 있다. 이번 EMU-320 입찰공고도 국내 최초로 차량과 유지·보수·공급이 함께 입찰에 공고된 바 있다. 그러나 입찰 관행은 기술·가격 분리입찰로 사실상 최저가 낙찰제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이번 입찰에는 최초로 공동수급방식이 적용되었다. 현재 철도공사와 SR이 적용하고 있는 계약 관련 기준은 전부 국가계약법을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으나 이는 건설공사에 적용 중인 것으로, 국가계약법 적용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사입찰을 위주로 적용되는 국가계약법과 관련 법률에 따른 최저가 방식의 ‘가격·기술 분리입찰’에 ‘공동수급(컨소시엄)’을 적용하는 방식은 건설공사의 특성상 설계와 공사의 분리가 명확하고 공동계약 참가자들의 특기에 따라 구분할 수 있으며 공동수급으로 지역 업체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철도차량은 하나의 계약 내에서 개발과 양산을 같이 이행한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일련의 연관기술을 제조과정에서 빈번히 교환하면서 완성품인 철도차량을 제조하여 납기 내에 국가의 시험평가를 통해 납품하는 철도차량 입찰은 기술의 상호 연관성이 매우 밀접하여 건설공사와 동일한 공동계약방식을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기술평가 방식 기준도 도마에 올라


또한 공동수급 방식 기술평가에 대해서도 평가대상과 자격 기준이 공동수급 구성원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2027년 개통 예정인 코레일의 평택∼오송선 KTX 노선에 투입될 EMU-320은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이다. 동력분산식은 맨앞의 동력차가 뒤에 연결된 객차를 끌고 달리는 동력집중식에 비해 별도의 동력차 없이 객차 밑에 모터를 분산 배치하여 주행하며 가·감속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현재의 입찰조건에서 경쟁에 뛰어든 어떤 컨소시엄의 경우 국내 업체는 고속전철 자체의 설계나 제작 실적이 없고 해외 업체는 동력분산식 고속전철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격 기준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컨소시엄 구성원의 역할을 보면 해외업체는 차체 설계 용역과 대차의 공급에 한정되어 사실상 부품업체에 불과하고 고속전철의 경험이 전혀 없는 국내 업체가 고속전철의 설계기술의 핵심인 차량시스템 설계를 포함한 대부분의 설계와 제작을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고속전철 실적이 없는 국내 업체가 해외 업체의 동력집중식 실적과 경험을 이용하여 자체 개발을 시도하는 위장”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실적이 있는 해외 업체의 이름만 빌려 컨소시엄 구성비율에 따라 기술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코레일과 SR이 국내외 업체 간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공동입찰을 허용했고, 평가 기준 중 납품실적 기준을 영업 최고속도 시속 320km 이상의 동력집중식 고속전철 또는 동력분산식 고속전철 제작 납품으로 지정했지만, 기술평가에서 이들의 능력의 검증과정이 모호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코레일은 ‘물품구매적격심사 세부기준’ 제6조에 따른 5년의 납품 실적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임의로 연장하여 유리한 조건으로 특정업체의 입찰참가를 허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부실한 기술평가는 변별력 없이 명목뿐인 공동계약(컨소시엄)을 통과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기준은 기술능력 부족과 납기 지연의 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고 코레일이 주장하던 해외 선진 기술의 도입을 통한 고속전철 기술의 발전과 확산의 기대에 있어 장점은 전혀 없고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국내 철도시장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공동수급방식을 허용한 이상, 코레일이 원하는 고속전철의 제작 경험이 있는 업체가 포괄적으로 기술책임을 가지는 실질적인 기술평가가 되도록 엄격하고 실질적인 기술평가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부실평가의 문제점 지적을 반영하였다는 코레일의 기술평가 부문에서 비계량평가에 정량평가 항목이 증가했으나 정량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에는 미흡하며 전반적으로 정성평가 부분이 많고 여전히 수행능력 평가는 설계능력, 계약이행능력 등에 대한 배점이나 평가 방식에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코레일은 2021년부터 계약자의 기술 부족에 의해 납기 지연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2023년에도 납기를 지연하고 있는 업체에 느닷없이 700억 원의 선급을 지급하는 등 파행이 계속되면서 계약이행과 납품능력이 제대로 검증된 업체를 선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과 함께 특정 업체 봐주기라는 논란을 남겼다. 납기 지연 문제도 해결책이 요원한 실정이다.

이렇듯 공동수급방식의 무리한 적용과 부족한 기술평가의 내용, 공동수급에서의 명확한 평가 기준 부재 등은 이미 계약된 철도차량의 이행과정에서 겪고 있는 설계 및 제작기술의 부족, 끝없는 납기 지연으로 인한 정부의 기회비용 손실, 부품업체의 도산, 기술 발전의 퇴보 등은 물론이고 지하철과 KTX가 제때 교체되지 못함을 겪게 되는 고장과 시민 불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종합심사평가 도입과 평가항목 정상화 필요


납기 준수, 설계능력 확인, 안전 확인, 품질 확인 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중요하다. 규격서 세부평가기준의 수행능력 평가에서 이러한 부분을 입찰자가 제안하는 내용에 대해 빈틈없이 철저히 검토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하여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세부기준을 만들고 높은 배점으로 수행하도록 하여 최근 철도 차량입찰에서 반복되고 있는 설계능력의 미흡이나 과도한 수주물량으로 납기가 지연되는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철도차량의 평가는 절차와 기준이 모호하여 평가과정에서 평가자 및 평가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평가위원 선정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마련하고 평가 전 이들로부터 공정한 심사를 확약받도록 제도화하는 한편 평가 결과를 공개하여 입찰자들의 입찰서류를 평가자가 공정하게 평가했음을 확인하고 이를 공개하여 이의 신청 등을 통해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방위산업이 주목된다. ‘K방산’으로 불리는 국내 방위산업이 지금의 성공을 이뤄내기까지는 오래전부터 첨단 무기 개발과 구매 등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계약법의 구매입찰방식에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방위산업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기술평가에서도 ‘무기제안서 평가지침’ 등을 통해 공정성 확보에 노력해 왔으며 최근에는 방위산업물품 구매만을 위한 별도의 ‘방위사업계약법’을 제정하고자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에서 발의하였다. 국내 철도업계 관계자는 “기술평가의 정상화와 함께 철도차량 입찰제도 자체를 기술평가와 가격평가의 점수를 합산하여 낙찰자를 결정하는 종합심사평가제 입찰방식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전하며 “철도차량 구매에 적합한 새로운 법체계 도입을 심각하게 검토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2018년 중국 시진핑 주석은 보아오 포럼 개막연설에서 중국시장의 개방 확대와 중국의 정부조달협정(WTO GPA) 가입을 언급하며 조달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GPA 가입이 확정된다면 국내 철도차량 업계 진출은 시간문제다. 중국은 2014년 지나친 경쟁으로 부실화가 우려되던 양대 철도차량회사인 중궈난처(CRS)와 중궈베이처(CNR)를 국영기업 중궈중차(CRRC)의 단일 기업으로 통합시키면서 철도 산업의 거대공룡으로 성장했다. 독일의 컨설팅사인 SCI 퍼키어 자료에 따른 지난해 세계 철도차량 시장 매출순위를 보면 CRRC는 28조7000억 원으로 세계 1위다. 그런 중국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철도시장에 진입한다면 저가 경쟁을 부추기며 중소 규모의 국내 철도 부품업계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 철도차량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다지고 기술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또한 현재 WTO GPA 규정의 국내 고속철도차량 설비 관련 제한 내용을 살펴보면 결론적으로 유럽연합(EU) 국가는 국내의 고속철도 입찰참여가 당연히 허용되지만 국내 업체는 EU 국가의 고속철도입찰 참여가 배제되는 것이다. 불평등한 상황에서 한국 철도 산업은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해외 시장에선 자국 생산 부품 비율 늘려


해외 시장의 경우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에 보호무역조항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현지 생산이나 자국 생산 부품 사용률을 높이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추세다. 이를 통해 해외 기술에 자국 산업이 종속되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술력을 특화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 국내 철도의 자생력과 기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외 시장에 비해 규모가 현저히 작은 한국 철도 시장에서 제작 3사가 저가 납품 경쟁을 지속한다면 결국 시장이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철도차량 제작사를 하나로 통합하고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 철도 시장은 제작사가 3곳이다 보니 좁은 국내 시장에서 가격 경쟁만을 부추기는 현행 제도 때문에 기술 투자보다는 매출 올리기에 급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 제작사가 낮은 단가로 수주하다 보니 자연히 저가 위주의 중국산 부품 사용이 늘어나고 자체 기술력이나 제작 노하우가 소홀해진다. 이것은 기술력 개발과 해외 시장 진출에 악재로 작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거느리고 있는 중국에 비해 국내 내수시장의 규모는 비교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경쟁 체제만을 고집하며 과도한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있어 일각에서는 지금의 무한 가격경쟁을 부추기는 입찰제도가 만들어진 근본적인 원인에는 코레일, 서울교통공사 등이 공기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이전된 지나친 누적 적자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공기업이 누적적자 해소를 위해 철도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독점 시장에선 가격 폭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정부의 적절한 가격 제한이 필요하다. 철도산업을 가격과 효율성만을 따지기 전에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한 국내 철도 업계 관계자는 “하루빨리 입찰 제도를 정상화하여 소모적인 논란을 종식하고 다양한 기술 경쟁력 강화로 해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중장기적인 철도 산업 육성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