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많은 유물 대신 선택과 집중 통해 깊이있게 소개” 리모델링 후 관람객 발길 이어져 경주박물관 불교실은 70점 추려… 디지털 영상 입혀 유물 설명도
“박물관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많은 유물을 선보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단 한 점의 유물이라도 관람객의 마음에 남기는 겁니다.”
2020년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실 재개관 프로젝트를 맡은 이원진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박물관은 기증 유물 5만여 점 가운데 1408점을 한꺼번에 전시했던 이전 기증실을 완전히 바꿨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 단장한 ‘기증Ⅰ실’에 있는 보물 ‘손기정 기증 청동투구’(왼쪽 사진). 박물관은 기증Ⅰ실을 리모델링하면서 기존 유리 진열장에 놓였던 이 유물(오른쪽 사진)을 144㎡ 규모 단독 공간에 배치해 몰입감을 더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국립경주박물관도 지난해 12월 ‘불교조각실’을 새로 단장하면서 동선을 없앴다. 기존 유물 137점 가운데 절반을 들어내 새 전시실에 70점만 추렸더니 불상을 전시실 군데군데 배치할 여유가 생겼다. 박아연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에게 동선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관람객이 유물을 선택해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특별전시가 박물관의 주력이었다면 이제는 상설전시실 재개관이 주력”이라고 덧붙였다.
유물 뒤편도 공개했다. 177cm 크기의 국보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옛 전시실에서는 벽면에 딱 붙은 채 전시돼 뒷면을 볼 수 없었다. 새로 단장한 불교조각실에서는 불상 주위를 거닐며 뒤태를 볼 수 있다. 조효식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이 불상 뒷면을 보며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해 보길 바랐다”며 “구석구석을 보면서 관람객 스스로 유물의 진면목을 발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 놓인 국보 ‘천상분야열차지도 각석’. 유물 위에 스크린을 띄워 각석에 새겨진 별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미술관 전시 디자인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한 이세영 논스탠다드 스튜디오 대표는 “상설전시야말로 박물관의 근본”이라며 “유료로 운영되는 기획전시실뿐 아니라 무료로 운영되는 상설전시실의 품격이 향상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관람객의 영향력과 안목이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