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한상권 퓨처키친 대표이사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자사 치킨 매장인 ‘왓어크리스프’에서 치킨 튀김 로봇을 이용해 닭을 튀기는 시연을 해 보이고 있다. 로봇이 고객의 주문을 직접 인식할 수 있어 사람이 주문을 별도로 입력할 필요는 없다. 주문이 들어 온 닭고기 부위를 집은 로봇팔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튀김 옷의 두께를 조절한 뒤 기름에 집어 넣는다. 조리가 끝나면 치킨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올라온다. 포장까지 완전 자동화할 계획이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이런 시대가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인난으로 사람이 귀해진 탓이다. 공장 자동화와 로봇 개발에 쓰이던 기술들이 식당 주방에도 적용될 요인이 생긴 것이다. 퓨처키친(대표이사 한상권)은 로봇으로 주방의 혁신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다. 위험하고 힘든 주방일은 로봇에게 맡기자는 생각이다. 2020년에 설립돼 튀김용 닭(치킨)을 조리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을 이용해 치킨 판매도 하고 있다. 판매를 하면서 완전 자동화에 필요한 데이터도 쌓아가고 있다. KAIST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한 한상권 대표이사(37)는 “로봇 관련 기술은 언제나 시대보다 앞서 준비돼 있다가 임금이 높아지거나 인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오면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로봇을 만드는 값은 싸지고 노동력은 비싸지는 지금이 주방 로봇이 확산될 때”라고 했다.
●닭고기 부위×반죽 종류×반죽 두께별로 세분화된 메뉴 가능
퓨처키친이 만든 치킨 튀기는 로봇의 정식 이름은 ‘로봇 주방자동화플랫폼-치킨조리버전 MVP(최소 기능 제품)’이다. 상용화를 할 수 있는 최소 기능을 갖췄고, 앞으로 더 고도화가 진행된다는 의미다.최소 기능만 갖췄음에도 이 로봇을 활용해 작년부터 치킨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퓨처키친은 자사 치킨브랜드 ‘왓어크리스프’ 이름으로 서울 강남에 2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로봇이 설치된 매장 1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1명이고, 다른 한 곳은 3명이다.
한상권 퓨처키친 대표이사가 고객의 주문이 자동으로 로봇 시스템에 입력돼 조리 상태가 실시간으로 사람에게 보여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작년 7월에 로봇으로 치킨을 처음 튀길 때는 닭고기의 순살만 활용했다. 로봇 팔이 닭고기를 잡는 기술이 초기 단계여서였다. 뼈가 포함된 다양한 부위를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는 그리핑 기술을 개발하면서 메뉴가 다양해졌다. 한 대표는 “로봇은 치킨 부위, 반죽액, 두께에 따라 각기 다른 최적의 튀김 시간을 적용한다. 일부 품목에는 두 번 튀기는 기법을 적용하는 등 상품마다 가장 바삭하고 맛있는 튀김 옷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배달앱을 통해 얇은 반죽의 치킨을 먹어 본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 협동 로봇 활용 대신 ‘실용적인 로봇’ 새로 설계
6일 서울 강남구 왓어크리스프 가로수길점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주방 한켠에 뜨거운 기름통 위로 6개의 로봇 집게들이 닭고기를 집어 반죽에 담그더니 일정한 두께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 칸으로 재빠르게 이동해서는 닭고기를 기름에 안정적으로 담갔다. 사람은 주문이 오면 필요한 부위를 선반에 올려두고는 고객 주문이 떠 있는 모니터를 보면서 양념을 준비했다. 다 튀겨진 닭고기가 바구니 채로 기름 위로 올라오자 양념 그릇에 옮겨 버무렸다. 한 대표는 “튀기는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화상 걱정을 줄일 수 있고, 모니터에서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로봇 시스템에는 카메라를 설치해 각 과정별로 조리된 과정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한 대표는 “주문한 고객은 영수증에 프린터된 QR코드를 찍어보면 자신에게 배달돼 온 닭고기가 어떻게 조리되고 포장됐는지를 볼 수 있다”며 “더 안심하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냐”고 했다.
한 대표는 “로봇 주방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사람 팔 모양의 협동로봇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며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주방을 혁신하기 위해 치킨을 튀기는 과정을 별도로 분석, 그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움직임만 있는 로봇 자동화 플랫폼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주방의 면적이나 필요한 생산속도 등에 맞춰 로봇 집게와 튀김그릇, 반죽그릇 등의 개수를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사업 내용
주방 자동화 플랫폼
주요 제품 및 서비스
치킨 조리 자동화 로봇 및 자동 주문 인식 프로그램
주요 기술
다양한 치킨 부위 로봇 그리핑 기술 및 정밀 배터링, 프라잉 기술, 자동 주문 인식 프로그램 및 생산 알고리즘
투자받은 금액
누적 45억 원(시드 5억 및 pre-시리즈A 40억)
투자 기관
퓨처플레이, 해시드, 스톤브릿지벤처스, (주)농심, 농심엔지니어링(주), 본촌인터내셔날(주)
대표이사 및 임직원 수
대표이사 한상권 총 8명(연구 및 개발 4명, 운영 3명, 경영지원 1명)
설립일/소재지
2020년 5월 서울시 강남구
●잡초 뽑는 로봇 개발 경력…제안 받고 스타트업에 합류
한 대표는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KAIST 대학원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했다. KAIST에 있을 때 국책연구과제에 참여해 논에서 잡초를 제거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고, 이를 기반으로 ‘그리노이드’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2016~17년 당시에는 배터리의 밀도가 낮아 로봇이 무른 논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다. 한 대표는 “학교에 있을 때는 로봇 기술 개발 자체에 의의가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되면 달려들곤 했다”고 했다. 이후 농기계 회사에 스카웃됐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농업 분야에서는 아직 로봇을 도입할 만큼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즈음에 스타트업 육성 회사(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의 제안을 받았다. 퓨처플레이는 로봇 기술자와 유명한 셰프, 식음료 브랜딩 전문가들을 모아서 창업하면 점점 더 구인난에 시달리게 될 요식업계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 대표는 세분화되는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구인난을 해결할 길은 로봇이라고 보고 제안에 응했다.스타트업 육성 회사가 주도해 세운 이런 회사는 ‘컴퍼니 빌딩 스타트업’이라 불린다. 한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마케팅, 기술 등의 영역에서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스타트업 육성 회사들은 창업자 및 핵심 구성원들이 사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분과 스톡옵션 등을 통해 충분하게 동기를 부여하는 편이다.
한 대표는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실생활에 적용된 실용적인 기술을 꿈꾼다”며 “첫 로봇을 만들면서 기존에 상용화돼 있는 부품을 최대한 접목해 싸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