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루에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수는 70개 정도라고 한다. 70여 개 중 하나로 기사에 맞는 메인 이미지를 찾는 데 2시간을 꼬박 썼다. 100% 똑 떨어지는 정답이 어딘가엔 꼭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결정장애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글쎄, 난 아무거나. 넌?”
“음, 나도 아무거나.”
결정은 원래 피곤한 것
‘메이비(maybe)족’은 “글쎄요”라는 애매모호한 대답만 할 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햄릿증후군’과 같이 똑 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향을 의미하는 또 다른 용어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는 결정장애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이는 정식 진단명이나 학술용어는 아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기 힘든 직장인들이 메뉴 선택에 활용할 수 있는 네이버 원판돌리기 게임. 네이버 화면 캡처
캐슬린 보스 미국 미네소타대학 경영학부 교수 연구팀은 의사결정이 얼마나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여러 실험을 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연구팀은 쇼핑몰에서 만난 쇼핑객들이 이날 물건을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결정을 했는지 묻고,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도록 요청했다. 결과는 많은 의사결정을 한 사람일수록 수학 문제를 끝까지 풀지 못하거나 답을 틀린 경우가 많았다. 보스 교수는 “선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기 훨씬 어려워했다”고 했다.
옵션이 많을수록 유리할까? 5~10개가 적당
결정이 피곤한 가장 큰 이유는 100% 완벽한 정답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선택지를 비교해볼 수 있어야 안심이 된다. 문제는 모든 선택지의 정보를 모으는 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겨울 코트를 사기 위해 온라인쇼핑몰을 검색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검은색, 20만 원대’ 두 가지 조건을 넣고 검색했더니 코트 수백 벌이 나온다. 한 사람은 적당히 비교해보고 1시간 만에 결제했고, 다른 한 사람은 가격, 소재, 배송, 후기 정보를 비교하고 따지느라 밤을 새우고도 코트를 사지 못했다. 둘 중 어떤 사람이 쇼핑 과정이 더 행복하게 느껴질까. 또 ‘득템’의 기쁨은 누가 더 클 것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폼페우 파브라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우리가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선택지의 수는 5~10개 사이라고 한다. 5개 미만일 때는 선택지가 적어서 불만족스럽게 여겨지고, 10개가 넘어가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한 게 아니라 적당히 있을 때 쉬운 결정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 자체도 기회비용이 든다
신지웅 예일대 경영학부 교수와 댄 애리얼리 듀크대 경영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헤매다가 결국 손해 보는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때 들어가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두 번째 그룹에는 일부 조건을 변경한 실험을 했다. 빨간 문을 클릭하면 선택하지 않는 나머지 초록색, 파란색 문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게 했다. 15번 이상 클릭하지 않으면 아예 사라지도록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컴퓨터 게임의 모형도. 실험 참가자들은 선택하지 않은 문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없어질 위기에 놓이자 이를 살려놓기 위해 기회비용을 지불했다. 매니지먼트 사이언스
결정하기 전 눈치 보는 한국인
신경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인지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정지된다고 한다. ‘실수=불쾌감’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여기에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 문화가 더해지면 실수에 따른 불쾌감은 더욱 증가한다. 작은 선택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실수했다고 평가받지는 않을지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며 꼭 먼저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 않던가.타인을 의식하며 눈치 보는 문화는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 최상진 중앙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한국인의 심리학’에서 한국인은 자신에 대한 상대의 평가, 호감 등을 크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주변 사람을 거스르지 않는 의견을 내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치 보는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자신의 체면이나 인상 관리 △평가 염려 △부드럽고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 등을 꼽았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몰라 결정이 어렵다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대신 의사결정을 해주지는 않았는지, 혹은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에게 최선인 답은 있을 수 있어도 100%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택의 완벽주의를 버리고 단 10, 20%만이라도 진짜 원하는 바를 선택하면 된다. 또 지금 내리는 결정이 최종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다’의 저자 요헨 마이는 “완벽한 정답은 실험실에는 있지만 현실에는 없다”며 “실수해도 세계는 멀쩡히 돌아가며, 실수를 한다 해도 대부분 나중에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