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다 한 이야기’ 최일도 목사 편
9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본부에서 최일도 목사가 배식을 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이런 밥퍼가 지금 철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에서죠. 밥퍼 건물은 서울시가 지었습니다. 땅도 시유지죠. 밥퍼는 이런 시청과 구청의 도움으로 10년이 넘게 이곳에서 무료 배식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관할 구청장이 바뀌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좀 복잡합니다만 간단히 말하면, 관할 구청의 입장은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건물이고, 또 그 안에서 불법 증축이 이뤄졌으니 철거하고 새로 안 지으면 강제 이행금(2억8000여만 원)을 내라는 것입니다. 밥퍼는 답답합니다. 건축·증축 허가를 낼 자격은 건축주(땅 주인 또는 땅 주인의 허락을 받은 사람)에게 있지요. 세입자인 밥퍼는 건축·증축 허가를 낼 자격조차 없는데, 불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애초에 땅 주인인 서울시가 건물을 지을 때 건축허가를 받았다면 지금의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서울 시장은 지금 오세훈 시장었이지요.
하지만 저는 누구 주장이 맞느냐는 걸 따지는 건 이 문제의 본질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더 슬기로운 방법으로 푸느냐가 아닐까요.
어떤 대상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돈을 들여 홍보를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망하는 기업이 있을 리 없겠지요. 이름만 대면 사람들이 ‘아, 그거!’하고 떠올리는 이름. 그게 바로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지요. 그동안 활용할 생각을 못해서 그렇지 밥퍼는 우리 사회에서 나눔과 봉사, 사랑의 이름으로 이미 각인된 명칭입니다. 이를 활용해 도시 재생 전문가, 예술가, 프로젝트 기획자 등의 도움을 받아 밥퍼 거리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나눔과 봉사의 거리로 탈바꿈시킨다면, 구청이 원하는 상업·청년문화 지역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도시개발의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여름철 한강 고수부지에서 열리는 야시장에서는 장소마다 수 십 대의 푸드 트럭이 갖가지 음식을 제공합니다. 바퀴 달린 푸드 트럭이 동대문구라고 못 가겠습니까. 공간만 마련해 준다면 얼마든지 찾아오겠지요. 시와 구는 푸드 트럭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푸드 트럭 사장님들은 다 사용하지 못한 재료를 밥퍼에 기부합니다. (밥퍼는 푸드 뱅크로 식자재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이곳에 놀러 와 음식을 사 먹는 것 자체가 기부가 되겠지요. ‘골목식당’처럼 백종원 선생님이 기부를 많이 한 푸드 트럭의 음식을 봐준다면 ‘맛 트럭’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푸드 트럭이 서 있을 수 있는 곳에 밴드라고 못 오겠습니까. 장소만 마련해주면 실력을 뽐내고 싶은 뮤지션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연주한 단체나 개인들에게 참가 자격을 주는 뮤직페스티벌은 어떻습니까.
나눔과 배려를 주제로 한 이벤트도 열 수 있습니다. 고대와 연대는 매년 야구 축구 등 5개 종목의 자웅을 겨루는 고·연전을 엽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이와 함께 헌혈 고·연전도 4주간 열렸더군요. 건전한 대학 헌혈문화를 조성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혈액 수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두 학교 학생들이 헌혈로 선의의 경쟁을 펼친 행사입니다. 밥퍼 거리에서 전국 각 대학의 헌혈 대항전이 펼쳐진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밥퍼에서는 봉사 활동을 한 분들에게 기념품으로 ‘밥퍼 밴드’를 줍니다. 푸드 트럭이든, 인근 식장이든 밴드를 찬 손님에게 약간의 할인을 해주면 어떨까요. ‘나눔과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더 맛있을 테고, 식당은 특별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장소가 활성화되면 선한 마음을 가진, 재능 있는 분들도 찾겠지요.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한 참치김밥이 나오기 전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해주는 첼리스트 정명화 선생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엄한 말입니다만, BTS라도 한 번 놀러 와 준다면 더 없이 고마울 것 같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면 앞서 소개한 것보다 분명 더 좋은 계획과 이벤트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밥퍼 거리’를 유례없는 나눔과 배려, 사랑의 거리로 재창조할 수 있다면, 어려운 그분들에게 하루 두 끼가 아니라 세끼를, 더 나아가 따뜻한 잠자리도 제공할 수 있겠지요. 설사 불법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하루 한 끼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준법이고 정의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밀어낸 자리에 설사 미슐랭 식당과 초호화 쇼핑몰이 들어선다 해도, 손님들이 정말 맛있게 먹고 놀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니까요.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우리가 하기 나름 아닐까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