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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정은]스타 캐스팅에 기대온 공연계, 잇단 사고로 구조적 한계 노출

입력 | 2023-02-18 03:00:00

김정은 문화부 차장


2019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 뮤지컬 ‘아이다’. 조세르 역의 한 배우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첫 장면을 소화하고 두 번째 등장까지 시간 차가 꽤 있던 배우는 대기실로 이동하던 중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소리쳤지만 무대에 올라가야 할 시간을 고작 몇 분 앞두고 스태프에게 발견됐다. 엘리베이터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결국 제작사는 ‘커버’(출연 배우가 긴급한 상황으로 무대에 서지 못할 때 대신 서주는 배우)를 투입해 사고를 막았다.

최근 공연계에서 기계 결함으로 인한 ‘공연 지연’ ‘캐스팅 당일 변경’이 발생해도 관객에게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진다는 본보 기사가 나간 뒤 복수의 공연 관계자들은 ‘아이다’ 사례를 언급하며 “4년 전엔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커버 배우를 준비해 활용한 미담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뮤지컬 ‘베토벤’의 경우 ‘카스파 반 베토벤’ 역의 배우 김진욱이 개인 사정으로 공연장에 늦게 도착해 공연은 20분 지연됐다. 관객들의 항의 및 환불 요구가 이어지자 제작사와 배우 소속사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그를 대신할 커버 배우는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는 ‘커버’ 대신 ‘20분 공연 지연’을 선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공연은 ‘30분 이상 지연 시 보상’하게 돼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관객들이 신인인 커버 배우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제작사 입장에선 웬만하면 커버 투입을 꺼리게 된다”고 전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지난달 17일 러빗 부인 역의 배우 전미도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에 불참하면서 공연 당일 다른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제작사 측은 관객들에게 예매 환불·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줬지만 일부 관객은 전액 환불을 요구하며 항의했다.

외국은 어떨까. 미국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되면 객석에 앉자마자 누군가 무료 공연 잡지 ‘플레이빌’을 나눠준다. 이 안에 가끔 “오늘 ○○ 배역은 △△가 맡는다”라고 적힌 하얀 종이가 끼여 있는 날이 있다. 일종의 캐스팅 변경 고지서다. 커버가 무대에 오른다는 의미다. 브로드웨이에선 이렇게 당일 공연장에 가서야 관객이 그날 배우 캐스팅 변경 사실을 안다. 그래도 관객들은 별 군말 없이 본다.

이렇다 보니 외국에선 캐스팅 변경을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국내는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주요 출연자가 바뀔 경우 제작사 자율적으로 티켓가의 110%를 돌려주도록 권고한다.

사정이 다른 배경은 뭘까. 국내 공연계가 수십 년째 의존해온 ‘스타 캐스팅’에 그 답이 있다. 외국 관객들은 공연의 중심지 브로드웨이 등에서 해당 작품을 봤다는 데 의미를 둔다. 배우는 공연 선택의 중요한 변수가 아니기에 캐스팅 변경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반면 스타 캐스팅으로 굴러가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국내 관객들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가 작품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다. 내가 선택한 배우의 연기를 보기 위해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한 만큼, 캐스팅 변경은 보상받아야 할 요인이 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스타에게 목매는 공연시장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다. 공연의 본질은 ‘작품’이지 ‘스타’가 아니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