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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운영 가능한 ‘치킨집’ 개발… “주방일, 이제 로봇이 할 때 됐다” [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3-02-18 03:00:00

로봇으로 주방 혁신 꿈꾸는 ‘퓨처키친’
노동력 귀해지고 로봇은 싸지는 추세…도심 요식업 주방에도 로봇 도입 가능
뜨거운 기름과 씨름하는 ‘치킨집’에 부위나 반죽별로 튀겨내는 로봇 적용
‘얇은 튀김옷’ 등 세분화된 메뉴 ‘인기’…“세상 모든 치킨, 로봇이 튀겨도 돼”




한상권 퓨처키친 대표이사가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자사 치킨 매장 ‘왓어크리스프’에서 치킨 튀김 로봇을 이용해 닭을 튀기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로봇이 고객의 주문을 직접 인식할 수 있어 사람이 주문을 별도로 입력할 필요는 없다. 주문이 들어온 닭고기 부위를 집은 로봇팔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튀김옷의 두께를 조절한 뒤 기름에 집어넣는다. 조리가 끝나면 치킨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올라온다. 포장까지 완전 자동화할 계획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주방은 적잖이 위험한 곳이다. 날카로운 칼과 뜨거운 불이 주요 도구들이니 말이다. 반복되는 작업들로 힘든 노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량 생산을 하는 식품공장에서는 조리 과정에 로봇이나 자동화 기기가 일찌감치 도입됐다. 하지만 도시의 수많은 식당 주방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런 시대가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인난으로 사람이 귀해진 탓이다. 공장 자동화와 로봇 개발에 쓰이던 기술들이 식당 주방에도 적용될 요인이 생긴 것이다. 퓨처키친(대표이사 한상권)은 로봇으로 주방의 혁신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다. 위험하고 힘든 주방일은 로봇에 맡기자는 생각이다. 2020년에 설립돼 튀김용 닭(치킨)을 조리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이 로봇을 이용해 조리한 치킨 판매도 하고 있다. 판매를 하면서 완전 자동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KAIST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한 한상권 대표이사(37)는 “로봇 관련 기술은 언제나 시대보다 앞서 준비돼 있다가 임금이 높아지거나 인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오면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로봇을 만드는 값은 싸지고 노동력은 비싸지는 지금이 주방 로봇이 확산될 때”라고 했다.
● 닭고기 부위×반죽 두께별로 세분화된 메뉴 가능

퓨처키친이 만든 치킨 튀기는 로봇의 정식 이름은 ‘로봇 주방 자동화 플랫폼―치킨조리버전 MVP(최소 기능 제품)’이다. 상용화를 할 수 있는 최소 기능을 갖췄고, 앞으로 더 고도화가 진행된다는 의미다.

최소 기능만 갖췄음에도 이 로봇을 활용해 작년부터 치킨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퓨처키친은 자사 치킨 브랜드 ‘왓어크리스프’ 이름으로 서울 강남에 2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로봇이 설치된 매장 1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1명이고, 다른 한 곳은 3명이다.

고객이 배달 앱을 통해 주문을 하면 로봇 시스템에 주문이 자동으로 입력된다. 메뉴는 여느 치킨집과 달리 닭고기 부위(닭다리, 윙, 봉 등)별로 조합할 수 있는 메뉴가 많다. 독특하게 튀김옷의 두께를 얇게 한 메뉴도 섞어서 주문할 수 있다. 또 튀김옷도 맥주발효반죽 등 3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사람이 튀긴다면 이런 다양한 메뉴에 손길이 많이 가 운영하기 힘들겠지만 로봇 시스템을 활용하면 복잡한 메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다”며 “다양한 조합의 이런 메뉴들을 3월부터 더 많이 선보일 것이다”라고 했다.

현 시점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튀겨진 닭고기에 양념을 바르고 상자에 담는 일이다. 양념과 포장을 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인데, 기존 시스템에 결합시킬 예정이다. 한 대표는 “시스템이 고도화될수록 메뉴와 조리법은 더 다양해질 것이고 사람의 손길이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작년 7월에 로봇으로 치킨을 처음 튀길 때는 닭고기의 순살만 활용했다. 로봇 팔이 닭고기를 잡는 기술이 초기 단계여서였다. 뼈가 포함된 다양한 부위를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는 그리핑 기술을 개발하면서 메뉴가 다양해졌다. 한 대표는 “로봇은 치킨 부위, 반죽, 두께에 따라 각기 다른 최적의 튀김 시간을 적용한다. 일부 품목에는 두 번 튀기는 기법을 적용하는 등 상품마다 가장 바삭하고 맛있는 튀김옷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배달앱을 통해 얇은 반죽의 치킨을 먹어 본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 협동 로봇 활용 대신 ‘실용적인 로봇’ 새로 설계
6일 서울 강남구 왓어크리스프 가로수길점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주방 한쪽에서 뜨거운 기름통 위로 6개의 로봇 집게들이 닭고기를 집어 반죽에 담그더니 일정한 두께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 칸으로 재빠르게 이동해서는 닭고기를 기름에 안정적으로 담갔다. 사람은 주문이 오면 필요한 부위를 선반에 올려두고는 고객 주문이 떠 있는 모니터를 보면서 양념을 준비했다. 다 튀겨진 닭고기가 바구니째 기름 위로 올라오자 양념 그릇에 옮겨 버무렸다. 한 대표는 “튀기는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화상 걱정을 줄일 수 있고, 모니터에서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로봇 시스템에는 카메라를 설치해 조리 과정별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한 대표는 “주문한 고객은 영수증에 프린트된 QR코드를 찍어 보면 자신에게 배달돼 온 닭고기가 어떻게 조리되고 포장됐는지를 볼 수 있다”며 “더 안심하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냐”고 했다.

한 대표는 “로봇 주방이라고 하면 흔히들 사람 팔 모양의 협동로봇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며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주방을 혁신하기 위해 치킨을 튀기는 과정을 별도로 분석해 그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움직임만 있는 로봇 자동화 플랫폼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주방의 면적이나 필요한 생산 속도 등에 맞춰 로봇 집게와 튀김그릇, 반죽그릇 등의 수를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퓨처키친은 작년에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초기에는 왓어크리스프 브랜드를 중심으로 닭고기 브랜딩과 판매에 사업의 무게 중심이 있었다. 투자자들과 내부 구성원들의 논의 결과 로봇 주방 자동화 플랫폼 기술 개발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그가 대표이사로 전면에 나선 배경이다.
● 잡초 뽑는 로봇 개발 경험 살려 스타트업에 합류
한 대표는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KAIST 대학원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했다. KAIST에 있을 때 국책연구과제에 참여해 논에서 잡초를 제거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고, 이를 기반으로 ‘그리노이드’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2016∼17년 당시에는 배터리의 밀도가 낮아 로봇이 무른 논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다. 한 대표는 “학교에 있을 때는 로봇 기술 개발 자체에 의의가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되면 달려들곤 했다”고 했다. 이후 농기계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업 분야에서는 아직 로봇을 도입할 만큼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즈음에 스타트업 육성 회사(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의 제안을 받았다. 퓨처플레이는 로봇 기술자와 유명한 셰프, 식음료 브랜딩 전문가들을 모아서 창업하면 점점 더 구인난에 시달리게 될 요식업계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 대표는 세분화되는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구인난을 해결할 길은 로봇이라고 보고 제안에 응했다.

스타트업 육성 회사가 주도해 세운 이런 회사는 ‘컴퍼니 빌딩 스타트업’이라 불린다. 한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마케팅, 기술 등의 영역에서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스타트업 육성 회사들은 창업자 및 핵심 구성원들이 사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분과 스톡옵션 등을 통해 충분하게 동기를 부여하는 편이다.

퓨처키친은 로봇 주방 자동화 플랫폼이 필요한 곳에 렌트 방식으로 로봇 시스템을 설치해 주고 원격지에서 시스템의 유지와 보수 관리를 해줄 계획이다. 로봇의 움직임과 작업 프로세스, 조리 레시피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각 매장에 제공하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거대한 요식업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향후에는 주방에서 쓰이는 다른 도구들을 로봇으로 자동화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임직원들과 함께 ‘치킨을 튀기는 일은 로봇이 하는 시대’를 열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