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표준에 맞춰 설계된 세상 장애인의 몸 억지로 맞추기보다 설계를 다르게 해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사회적 디자인 사례 소개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사라 헨드렌 지음·조은영 옮김/308쪽·1만7800원·김영사
미국 적응형디자인협회 소속 디자이너들이 발달장애와 뇌전증성 뇌병증으로 똑바로 앉기 어려운 2세 니코를 위한 맞춤형 의자를 제작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그 결과 세상에 없던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강연대가 탄생했다. 저자와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항공 우주 공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검은색 탄소섬유판으로 ‘3단 접이식 강연대’를 만들었다. 경첩으로 연결된 다리를 펼친 다음 지지대를 세우고 마지막 상판을 올리면 언제 어디서든 어맨다를 위한 강연대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묻는다. 어쩌면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된 이 세상에는 어맨다처럼 매일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회적 디자인을 연구해온 저자는 책에서 어맨다를 위해 제작한 강연대뿐만 아니라 어린 장애인을 위해 만든 맞춤형 가구, 청각 장애인을 위해 지은 건축물 등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디자인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무수히 많은 장애인들과 디자이너들은 이런 상상을 이미 현실로 만들어 왔다는 얘기다.
30년간 뉴욕 전역에 있는 어린 장애인들을 위해 저렴한 맞춤형 가구를 만들어온 ‘적응형디자인협회(ADA)’가 대표적이다. 일례로 ADA는 발달장애와 뇌전증성 뇌병증으로 똑바로 앉을 수 없는 두 살 니코를 위해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었다. 밥을 먹을 때, 놀 때, 낮잠 잘 때 아이가 다양한 각도로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침을 더한 ‘의자-테이블’이 바로 그것. 놀랍게도 이 특별한 가구의 주재료는 종이 세 겹을 덧댄 삼중 골판지다. 저자는 다른 몸을 위한 디자인에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장애는 일부에게만 영원히 속하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질병이나 사고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다른 디자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 노인이 되면 무릎을 구부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조차 낯설고 힘들어진다. 화장실 변기뿐일까. 저자의 말처럼 신경 써서 주변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함께 바꿔 나갈 곳은 어디에나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