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K1 전차가 105㎜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뉴스1
남북한도 뛰어든 우크라이나 ‘대리전’
소련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우리 주변에선 가깝든, 멀든 늘 전쟁이 있어났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종의 ‘대리전’에 남북한도 가세하고 나섰다. 한국이 폴란드를 위시한 동유럽에 판매하는 막대한 무기 덕에 각국은 노후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 대량 수출된 한국산 포탄에 힘입어 우크라이나는 미국으로부터 포탄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북한은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에 상당량의 포탄과 대전차 무기를 공급한 대가로 원유 등의 자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미국, 유럽 국가에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수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산 무기·탄약 수입국이 해당 물량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것은 금지한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조치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1월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을 거부하던 독일 등 일부 회원국도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입장을 바꿨다”면서 한국도 무기 지원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언론도 해당 사안을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나토의 요구에 한국이 ‘노(no)’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며 한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정치적 결단’ 작용한 노르웨이 전차 수주전
지난해 4월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이륙을 앞둔 C-17 수송기에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155㎜ 포탄이 실려 있다. 뉴시스
최근 국산 K2NO가 노르웨이 주력 전차 수주전에서 아쉽게도 독일 레오파르트 2A7에 고배를 마셨다. 요나스 가르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안보 협력 강화라는 정치적 결단이 작용했다”는 취지로 차기 전차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진영’ 일원으로서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않는 한국 측 태도가 유럽에서 어떻게 비치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 한국 안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북한이라는 현존 위협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 군이 사용할 무기와 장비, 물자도 부족한 마당에 나토 회원국처럼 무기고를 털어 우크라이나를 도울 여유는 없다. 한국군에 인도됐어야 할 전차, 자주포, 전투기 상당수가 최근 폴란드로 수출돼 전력 공백 우려가 생긴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냉전체제가 다시 들어선 마당에 자유민주주의 진영 일원으로서 책임을 방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70년 전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에게 큰 빚을 지지 않았던가. 우리의 안보 태세를 굳건히 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큰 도움을 줘 유럽 각국에 큰소리 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그런 점에서 한국은 최근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구형 전차를 대량 공여하기로 한 소식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 서유럽 국가는 각국 정부나 방산업체가 보관 중인 구형 레오파르트 1A5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로 했다. 당장 지원하는 전차 성능이 아쉽더라도 공여 기간을 단축하는 속도전에 나선 것이다. 독일 2개 업체가 보관 중인 187대와 벨기에 업체의 50대, 덴마크 정부 측이 보유한 20대 등 전체 물량은 257대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 편제 기준으로 6개 기계화여단에 전차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독일제 포탄 위력, 러 전차 격파 역부족
독일 레오파르트 1A5 전차. 크라우스마페이베그만 제공
포탄에도 수명이 있다. 장기간 보관하면 추진 장약이 수분을 머금어 뭉치게 된다. 이런 포탄은 발사가 안 되거나 장약 불완전연소 현상이 일어나 명중률과 위력이 크게 약화된다. 현재 유럽에 가장 많이 보급된 105㎜ 전차포용 철갑탄은 독일제 DM33 모델이다. 이 포탄은 최적의 조건을 갖춰도 2000m 거리에서 균질압연강판 420㎜를 관통하는 위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포탄 보관 상태가 불량하면 위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러시아군 주력 전차인 T-72의 전면장갑이 500㎜ 수준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화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105㎜ 전차포탄을 공급하면 우크라이나와 나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군은 1000대 이상의 K1 전차를 운용 중이다. 이들 기갑 전력을 유지하고자 105㎜ 포탄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한국산 105㎜ 포탄, 그중에서도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세계 최정상급 성능으로 정평이 났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개발된 구형탄 K274는 DM33보다 우수한 450㎜ 수준의 관통력을 지녔다. 그 후 개발된 K274N 철갑탄은 성능이 크게 향상돼 510~550㎜ 관통력을 발휘한다. 2000m 거리에서 증가장갑을 장착하지 않은 러시아군 T-72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교전은 대부분 500m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정도 가까운 거리라면 증가장갑을 장착한 러시아군 T-72 전차도 파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결정적 도움 될 K-포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가 2월 2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됐다. 뉴시스
올봄부터 우크라이나군에 대량으로 배치될 레오파르트 1A5가 한국산 포탄을 운용하면 최일선 주력 전차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나토는 여름이 되기 전 러시아군 공세를 막아내고 대반격에 나서 크림반도 일대까지 수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105㎜ 전차포탄 공여로 전승에 일조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우방국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77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