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승리-개혁과제 갈길 바쁜 尹 당 장악 무리수에 지지층만 좁혀 당은 조언그룹… 혼연일체는 허상 다양한 세력 품는 큰 물결이 정도
정용관 논설실장
1년 전 이맘때 대선 구도는 혼미했다. 정권교체 진영의 단일화는 삐걱댔고 초읽기 단계까지 몰렸다. 안철수 후보가 마지막 심야 회동을 제안했을 때 윤석열 후보 측 첫 반응은 다소 떨떠름한 쪽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성사됐다. 단일화 효과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이제 와 따지는 건 좀스럽다. 미미했든 아니든 분명한 건 역사의 물꼬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단 1%만 기여했다 해도….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단일화 상대였던 사람에게 “국정 훼방꾼” “적” 운운하는 상황을 접하며 ‘2번’을 찍었던 이들 중 “뭘 저렇게까지?” 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처럼 대놓고 역린을 뽑으려 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 속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그저 정권교체 공치사를 좀 과하게 하며 ‘윤안 연대’ 구호를 내세웠을 뿐이다. 역린을 건드린 건지조차 몰랐던 게 안 후보의 잘못일 순 있겠지만 “적”으로 규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직접 거칠고 투박한 비(非)정치적 용어까지 써가며 속내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태도가 생경하긴 하다. 여의도 스타일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식의 발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덜 위선적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당내 인사들을 향한 적의 표출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진심은 뭘까,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윤핵관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심리의 영역이라면 내년 총선 승리 여부는 대통령의 명줄이 걸린 문제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식물 대통령’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그래서 더 두렵고 조바심을 낼 수도 있다. 이준석 트라우마가 컸다. 손발이 착착 맞는 대표를 세우고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똘똘 뭉쳐 이재명당과 아마겟돈 수준의 일전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할 법하다. 박근혜 사례처럼 대통령과 당이 따로 놀다 망한 잔혹사가 멀리 있지 않다는 얘기에도 귀가 솔깃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당정일체, 명예당대표 추대 얘기에 이어 대통령실과 당의 ‘혼연일체’ 주장까지 들고나온 건 지나치다. 혼연일체란 생각과 의지, 행동이 합쳐져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건데, 무슨 검사동일체 원칙의 여의도 확장 버전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대통령과 당이 사사건건 부딪쳐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뜻에 따라 당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이야 대통령의 힘이 세니까 눈치를 보지만 당정 혼연일체는 허상일 뿐이다. 당은 다양한 민심의 통로이자 국정 조언 그룹이어야 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런 해석을 내놨다. “지금 용산이 가장 신경 쓰는 건 김건희 여사 특검 문제일 거다.”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똘똘 뭉쳐 있지만 지금 여당은 그렇지도 못하니 그나마 방어벽을 쳐줄 안전판이 누구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란 얘기다. 반면 다른 인사는 대통령이 “정치판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윤석열당’으로 재편하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여의도 물갈이’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던진 “탈당” “신당 창당” 얘기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윤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대 이후 여당은 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겠다.
정치는 기획이나 의도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 성질이 있다. 당장 친윤 핵심들은 대통령이 전대에 참석한다는데 1차에서 과반 득표 승리를 얻지 못할까 내심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재명 체포동의안 부결이 아니라 아예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하는 초강수를 둘지도 모른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