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지역 원격수업용 노트북 너무 부족 우크라이나판 ‘미네소타 프로젝트’ 기대
조은아 파리 특파원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취재하러 찾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 살배기 딸을 키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는 몇 달 전 갑자기 울린 공습경보에 부리나케 아이 학교 앞으로 달려갔다. 스마트폰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는 아이들이 학교 지침에 따라 교내 대피소로 대피했다는 공지가 떴다. 딸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공습경보가 종료될 때까지 학교 앞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갑자기 ‘교내 대피소에 (공중 살포) 지뢰가 떨어졌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아이들은 다른 피난처로 자리를 옮겼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는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이날 이후 ‘학교는 더 이상 보낼 곳이 아니다’는 생각에 집에서 원격수업만 시키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의 포격과 미사일 공격에 교실을 잃은 아이가 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쟁으로 학교 등 교육시설 수천 곳이 파손돼 우크라이나 어린이 약 500만 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어린이 약 190만 명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참혹한 현실 속 아이들에게 힘든 일상을 이겨내는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키이우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도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 기자를 붙잡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세계를 탐색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노트북을 전달해 왔다. 다만 여전히 노트북이 부족한 상황이니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신제품뿐 아니라 중고 노트북을 기부받아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도우면 어떨까.
우크라이나에서 스마트폰 및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우울감을 느끼거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같이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생긴 사람이 많아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신건강 자가 진단용 앱 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클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상자가 많아지면서 최전선이 아닌 키이우 병원들마저 찾아온 환자를 돌려보낼 지경이다. 전시 의료용품 지원에 이어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의료 기술을 전수할 필요도 있다.
6·25전쟁 직후 한국은 미국의 전문 기술을 전수받는 ‘미네소타 프로젝트’ 수혜를 받았다. 당시 미 국제개발처(USAID)가 지원한 1000만 달러를 토대로 농학과 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미네소타대를 중심으로 서울대 복구와 농과 및 공과대학 발전을 도왔다. 전후 우방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IT 강국 한국’은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다. 정부와 대학이 70년 전 우리를 떠올리며 우크라이나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