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블랙홀’된 의대] 이필수 의협회장 “정부에 바란다” 뇌혈관 수술 수가, 일본의 20%에 불과 지방 의료난, 시니어 의사 활용해 해결을 필수의료 사고, 중과실 없으면 면책 필요
“국고 투입해 수술 수가 높여야”
이필수 의협회장 “정부에 바란다”
뇌혈관 수술 수가, 일본의 20%에 불과
지방 의료난, 시니어 의사 활용해 해결을
필수의료 사고, 중과실 없으면 면책 필요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14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의사 수보다 필수의료로 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부가 최근 분만 및 소아 진료 보상 강화, 응급의료체계 개편 등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수가는 결국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나가는데, 무한정 높일 순 없지 않나.
“국내에서 뇌혈관 개두술(머리를 열고 하는 수술)에 책정된 수가는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수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려면 건강보험 재정의 틀 안에서 조정하는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듯’ 다른 분야의 수가를 깎아서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공의 과반이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이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붕괴가 필수의료 기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꼰대’ 같은 이야기지만 내가 수련받을 때(1980년대 후반)는 전공의 2년 차만 돼도 간단한 맹장염 수술 정도는 맡아서 했다. 지금 전공의들은 근무 시간은 길지만 잡무에 시달릴 뿐 이런 경험을 쌓기 어렵다. 대학병원들은 입원 환자들을 돌보는 입원전담 전문의를 뽑아서 전공의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전공의들이 교육과 수련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의대 졸업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다. 이미 공급이 충분한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의 의사만 늘어날 뿐이다. ‘어떤’ 의사가 부족한지를 잘 보고, 지금 있는 의사를 부족한 분야로 진출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었는데 의사 수를 늘리면 건보 재정에 부담이 더 커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명 늘면 1인당 의료비 지출이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 의사가 모자란 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정년 퇴직한 의대 교수 등 ‘시니어 의사’의 활용을 제안한다. 나이가 지긋한 선배 중에서도 현업에 남고 싶어 하는 분이 많다. 이분들이 고향에 내려가 의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면 의료취약 지역을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다.”
의료계에선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 등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점 때문에 위험한 수술이 많은 필수의료 분야 종사를 꺼린다고 말한다. 이에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에 한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기소나 형사 처벌을 면제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책임을 면제하자는 게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까지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건 과하다는 것이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의사와 간호사 등 7명이 기소되고 이 중 3명은 구속됐는데, 5년간의 재판 끝에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의료계에선 ‘소아청소년과는 가면 안 되는 곳’이란 인식이 굳어지고 말았다. 의료진이 위중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특례법이 필요하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