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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쇼트 셀러’ 놓고 “시장 파수꾼” vs “먹튀 세력” 논란

입력 | 2023-02-21 03:00:00

‘수소차 사기’ 밝힌 힌덴버그 리서치… 인도 최대 재벌 ‘아다니’ 부정 폭로
그룹회장 순자산-기업주가 반토막
“부실경영 파헤쳐 시장 바로잡아”
“과도한 의혹 제기로 수익만 챙겨”




행동주의 투자사 ‘힌덴버그 리서치’의 공격으로 인도 최대 재벌기업 아다니그룹이 1988년 설립 이래 사상 최악의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힌덴버그의 보고서는 아다니그룹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회사가치를 부풀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같은 폭로로 연초까지 세계 3위 부호였던 가우탐 아다니 회장의 순자산은 1200억 달러(약 155조 원)에서 18일 491억 달러(약 64조 원)로 쪼그라들었고 주가는 반 토막 났다. 아다니그룹을 정조준한 힌덴버그 리서치에도 시장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37세의 네이선 앤더슨이 2017년 창업한 힌덴버그 리서치는 일명 ‘행동주의 쇼트 셀러(short selling activist)’다. 가치가 과대 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공매도(쇼트 셀링)를 걸어놓은 뒤 기업 부정행위를 직접 파헤쳐 폭로한다.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얻는다.

힌덴버그 리서치가 처음 명성을 얻은 건 2020년이다. 힌덴버그 리서치는 당시 ‘제2의 테슬라’로 불리던 미 수소차 제조사 니콜라가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폭로한 후 공매도를 걸었다. 니콜라는 수소로 움직이는 트럭이라면서 내리막길을 주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실제 이 트럭은 수소가스 저장 탱크 없이 중력에 의해 굴러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사실로 확인됐고, 결국 트레버 밀턴 니콜라 창업자는 지난해 10월 증권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행동주의 쇼트 셀러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해외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카슨 블록 ‘머디워터스’ 대표는 2010년부터 중국 기업들의 부정행위를 파헤쳐 ‘중국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11년 캐나다 증시에 상장된 중국 최대 벌목업체 시노 포레스트가 매출과 자산을 부풀렸다고 폭로했다. 결국 이 회사는 주가가 80% 이상 폭락하며 1년 뒤 파산했다. 2020년 블록이 매출 조작 의혹으로 공격한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도 나스닥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렇듯 활약이 이어지고 있지만 행동주의 쇼트 셀러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첨예하게 갈린다. 이들은 스스로가 기업의 부실경영을 낱낱이 까발려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일 워싱턴포스트(WP)는 행동주의 쇼트 셀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매년 평균 11%의 대형 상장기업이 증권사기를 저지르고 있고, 이는 연간 주식 가치 1.7%를 파괴하지만 전체의 3분의 1만 세상에 알려진다”고 보도했다.

반면 이들이 과도한 의혹 제기로 불안을 야기한 뒤 수익만 챙기고 달아나는 ‘먹튀 세력’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게다가 폭로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2018년 미 농지투자 자문회사 ‘팜랜드 파트너스’의 특수관계 거래 등을 주장해 하루 만에 39%의 주가 폭락을 일으킨 퀸턴 매슈스는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미 그는 공매도로 이익을 챙긴 후였다.

이번 아다니그룹에 대한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두고도 힌덴버그는 2년간 조사의 결과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결정적인 ‘한 방’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들이 선량한 목적을 갖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 군집 행동을 이끌어 내려는 것인지는 결국 폭로 이후 사후 검증을 통해 알 수밖에 없다”며 “결국 개인 투자자들은 정보를 걸러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