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곧 1년이 된다. 전황은 지난해 11월 이후 교착상태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를 복원하고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는 결의가 높지만 확전을 우려하는 서방은 그간 다소 소극적인 지원을 해왔다. 러시아의 상황도 녹록하지는 않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경제가 3% 남짓 후퇴했다고 하지만 물가 상승률이 10%를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 충격이 상당히 컸다는 얘기다. 서방의 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경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돼 마냥 전쟁을 끌고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올해 안에 전쟁에서 성과가 필요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도 비슷하다. 11월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패배는 악재가 될 것이다.
현재 러시아 병력이 결전을 위해 다양한 경로로 집결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에 맞서 최근 서방도 우크라이나에 최신형 전차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래저래 이번 상반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분수령’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10% 이하의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유럽 대륙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참전하면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는 아시아 지역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성공해 크림반도까지 탈환하거나 러시아가 완벽하게 패배할 확률은 각각 20%와 5%로 예상한다. 이상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은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하는 경우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으려는 협상용 카드로 활용한다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푸틴이 어떤 도박을 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수개월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질 단기 시나리오 못지않게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유지돼 왔던 ‘경제 최우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다. 안보적 목적을 위해 경제가 이용되고, 시장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원리가 훼손되고 있다. 이는 금융시장의 투자자들도 경제 이외의 지정학적 변수 등을 고려하는 등 투자전략 모델의 적극적 변경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