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 (블룸버그 Bloomberg 갈무리) 2022.05.17 /뉴스1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작년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일으킨 가상화폐 발행사 테라폼랩스와 이 회사 공동창업자 권도형 대표를 뉴욕 연방지방법원에 지난주 기소했다. 연방 증권법상 사기 혐의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최소 400억 달러(약 51조85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권 대표가 미국 법정에 설 가능성이 커졌다.
권 대표는 미 달러화에 1 대 1로 가격을 고정하고, 상호보완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 하락을 막는다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루나를 발행해 가상화폐 업계의 거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코인 대량 투매가 발생하자 테라는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99.99% 폭락했다. 미국 내 투자자의 피해가 커지자 SEC는 동유럽에 잠적 중인 권 대표의 사법 처리를 서둘러 왔다.
주목되는 건 SEC가 테라·루나를 ‘무기명 증권’으로 보고 권 대표에게 증권법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법당국은 가상화폐가 증권인지 불확실하고,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칠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하기 힘들어 증권 사기로 처벌하는 데 애를 먹었다. 권 대표가 거듭 “실패일 뿐 사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1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스위스 은행 계좌로 빼돌리고, 1억 달러어치를 현금화해 도피자금으로 썼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쓸모가 전혀 입증되지 않은 불량 코인에까지 2030세대, 은퇴자의 투자가 몰리면서 국내에서는 재작년 3조 원, 작년에는 1조 원 넘는 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검경은 SEC의 판단을 계기로 주춤했던 코인 사기 수사와 처벌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회도 1년 넘게 미루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 관련 입법을 더욱 서두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