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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은 ‘장기 기증’ 아빠가 주는 선물”

입력 | 2023-02-21 03:00:00

장기기증본부, 자녀 11명에 장학금
“아빠도 하늘나라서 열심히 사시길”
“장기기증은 새 삶을 선물하는 씨앗”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진행된 제4회 도너패밀리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서 장학 증서를 받은 학생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20년부터 장학회를 만들어 뇌사 장기 기증인 자녀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장학금 소식을 듣고 ‘아빠가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만큼 헛되게 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데 사용할 생각이에요.”

2020년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중학생 안현균 군(14)은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장학금을 받는 소감을 밝혔다.

안 군은 “항상 오후 8시쯤 퇴근하셨던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매일 오후 8시만 되면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며 “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아빠도 하늘나라에서 열심히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안 군의 아버지 안경상 씨는 뇌출혈로 집에서 쓰러진 후 세상을 떠나기 전 간과 폐, 신장 등을 5명에게 기증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이날 안 씨와 같이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장기 기증으로 새 생명을 살린 이들의 자녀를 위한 제4회 도너패밀리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을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이번 수여식에선 뇌사 장기 기증인 자녀 11명이 장학 증서를 받았다.

장학생 대표로 소감문을 낭독한 대학생 김도엽 씨(23)는 2009년 뇌졸중으로 아버지 김형진 씨를 떠나보냈다. 김 씨는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신 아버지를 보낸 지 올해로 14년째”라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아빠 없이 보냈지만 훌륭하게 자라려고 노력했다. 아빠처럼 좋은 아버지가 될 테니 잘 봐달라”고 했다. 김 씨는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장기기증이 마치 ‘씨앗’처럼 느껴져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2017∼2021년 뇌사 장기 기증인 2334명 중에는 30∼50대가 1413명(60.5%)으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 뇌사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자 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20년부터 도너패밀리 장학회를 만들고 뇌사 장기 기증인의 자녀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날은 중학생 1명, 고등학생 3명, 대학생 7명 등에게 총 1740만 원이 지급됐다.

박진탁 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생명나눔의 자긍심을 품은 뇌사 장기 기증인의 자녀들이 장차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길 응원한다”며 “앞으로도 뇌사 장기 기증인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