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신규가입 막고 일감 독차지 非노조원 쓰면 공사 못하게 방해 어렵게 자격증 따도 ‘취업 봉쇄’
목수인 조모 씨(35)는 2020년 어렵사리 딴 타워크레인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2년 넘게 ‘장롱면허’로 묵히고 있다. 이전에도 목수였던 그는 건강 악화로 200만 원을 들여 타워크레인 기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그가 타워크레인에 오른 횟수는 0번. 타워크레인 업체 40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비(非)노동조합 기사를 태우면 공사를 방해받는다”며 번번이 퇴짜 맞았다.
친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도 노조 가입을 부탁했지만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들은 “(노조에) 가입해도 6개월∼1년은 일 못 한다. 노조의 ‘건설 현장 장악’ 집회에 동참해야 일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이 셋인 아빠 조 씨는 생계가 막막해지자 결국 다시 목수로 일하며 다른 자격증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생각해보니 건설 현장에 몸담은 10년간 비노조 타워크레인 기사를 딱 1명 봤다”며 “타워크레인 말만 들으면 이제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노조가 전국 건설 현장을 장악하며 비노조원 채용을 방해하고 소속 노조원 채용을 강요하면서 신규 기사들의 진입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노조가 건설 현장의 갑(甲)이 되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노조 근로자들의 노동권과 취업권을 박탈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타워크레인 노조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노조 가입 문턱을 높여 신규 기사 진입을 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전국 현장에 설치된 대형 타워크레인은 3654대(지난해 말 기준)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타워크레인 관련 노조 소속 노조원 수(약 4000명)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 따르면 한 해 770여 명(2018∼2022년 평균)의 신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노조가 사실상의 인력사무소 역할을 하면서 이들은 택배 아르바이트나 퀵서비스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노조 가입해도 6개월은 ‘현장장악 집회’ 동참해야 일감 줘”
파업 반발하자 노조에서 제명
일할 기회 없는데 경력2년 요구
“3000만원 내야 가입” 얘기도
2019년 타워크레인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딴 안모 씨(39)는 최근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가 4년간 타워크레인에 오른 건 딱 4번뿐이다. 타워크레인 노조가 파업 때 현장을 멈추자 대체 기사로 일한 게 전부다.
그는 취업에 노조 가입은 필수란 얘길 듣고 부지런히 건설 현장을 돌았다. ‘노조 인맥이 필요하다’는 말에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로 일하기까지 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기사들과 어렵사리 가까워진 뒤 조심스레 노조 가입을 부탁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너무 열 받아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 ‘왜 가입이 안 되느냐’고 따진 적도 있다”며 “자격증 준비 학원에서 만난 15명 모두 취업에 실패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노조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
타워크레인 기사 구직자들은 취업을 위해 노조에 가입하려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노조들은 대부분 2년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며 가입을 거절한다. 경력을 쌓으면 받아준다는 건데, 비노조 기사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현장은 모두 노조가 장악해 놓은 상황에서 가입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노조가 대형 타워크레인 일자리를 독차지하는 사이 비노조 기사들은 그동안 노조가 찾지 않는 소규모 건설 현장의 소형(무인)타워크레인 일감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소규모 현장은 월급도 많지 않고 월례비를 받기 어려워 노조 압박이 비교적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장마저 최근 노조가 조합원 채용 강요를 하며 비노조원의 취업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원래 배달 기사를 하다 300만 원을 들여 지난해 자격증을 딴 조모 씨(34)는 일자리 때문에 부산에서 충남까지 이사했다. 그는 “부산에선 타워크레인 기사 일자리가 아예 없고 그나마 충남에선 소형 타워크레인(3t 미만)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왔다”며 “이달 일이 끝나는데 소형 현장까지 노조가 밀고 들어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 “노조원이어도 집회 참여해야 일감 받아”
노조가 가입 기간, 노조 내 입지 등에 따라 일감을 나눠주는 사실상의 ‘인력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타워크레인 선임 기사로 통했던 김모 씨(54)는 한때 노조 간부까지 지냈다가 현재 공장에서 일한다. 그는 1998년 자격증을 딴 뒤 ‘노조 간부가 아니면 거주지와 먼 곳의 일감만 받거나 돈을 적게 주는 현장에 배치된다’는 말에 ‘먹고살려고’ 간부가 됐다. 이후 파업을 많이 했는데 ‘힘 있는 노조 간부’가 있는 현장은 예외였다. 해당 간부는 돈을 벌려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 그는 부당하다며 반발하자 그 길로 (노조 간부에서) 잘렸다. 김 씨는 제명당한 뒤 비노조원 자격으로 간간이 일했지만 같은 현장의 노조원 기사들에게 극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비노조원 타워크레인 기사가 현장에 오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했다.
노조가 시위에 참가해야 일자리를 주는 식으로 신규 현장을 장악하기 위한 인력을 포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관계자는 “2∼3년 전 직원 한 명이 노조에 가입했는데 대체 기사로만 일하고 아직도 제대로 된 일감을 받지 못했다”며 “소형 타워크레인을 좀 타다 또 시위를 나가는 식이라고 들었다. 노조 간부 정도 돼야 제대로 된 일감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 노조, 일감 독점 무기로 건설사에 월례비 요구
건설업계는 타워크레인 노조가 일감 독점을 무기 삼아 건설사에 급여 외에 별도로 월 500만∼700만 원씩 지급하는 월례비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타워크레인 노조가 대형 타워크레인 현장을 장악하고 일감을 독차지한 건 2010년대 후반부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타워크레인 노조가 생긴 후 2010년 중반까지만 해도 비노조원과 노조원이 함께 일했지만 이전 정부인 2017년경부터 비노조원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비노조원 기사가 현장에 들어오면 노조 소속 기사들이 욕하거나 일을 못 하게 몸으로 막는다. 타워크레인에 타고 있으면 밑에서 망치로 크레인을 두들기는 등 아찔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사장 한모 씨는 “비노조원을 고용해서 잡음이 생기고 눈치 보느니 노조원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노조 측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현장에서 위험하고 어려운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경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설사나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서 경력이 없으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본인들도 아무나 노조 가입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노총 타워크레인 노조 지부 관계자는 “신규 기사를 노조원으로 받아도 일을 당장 할 수 없어 쉽게 받을 수 없다”며 “그래도 경력을 고려해 조금씩 뽑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개별 계약을 하면 임금, 처우가 낮아져 전체 노동자 임금이 하락할 수 있어 개별 계약은 안 한다”며 “신규 진입자가 억울할 수는 있지만 일자리가 한정돼 노조도 기존 조합원을 어쩔 수 없이 우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