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집안싸움이 더 치열한 법이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여권 내부 갈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각 정당의 대표적인 내전 두 가지는 대선 후보 경선과 당대표 선거다. 한배를 탄 식구끼리의 경쟁인 탓에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작아 격렬한 네거티브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친윤(친윤석열) 진영이 유승민 전 의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지난 대선 후보 경선의 앙금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 간 갈등의 근원은 결국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맞붙었던 대선 후보 경선이다.
● 끝내 분열로 이어졌던 2·8 전대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2015년 2월 새 지도부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를 열었다. 당시 당대표 선거에는 민주당을 지탱하는 세 주축 세력이 모두 뛰어들었다.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호남과 옛 동교동 세력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이인영 의원을 각각 내세웠다. 2015년 2월 8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전 대통령과 후보로 나섰던 이인영 의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부터) . 동아일보DB
문 전 대통령 측과 박 전 원장 측 모두 “이제는 저쪽과 다시 못 볼 사이가 됐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은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위인 문 전 대통령과 2위 박 전 원장의 격차는 불과 3.5%포인트. 박 전 원장 측은 당대표 선거에서 졌지만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자신들이 민 주승용 전 의원을 1위로 올려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문재인호’는 출범했지만, 치열했던 경쟁의 후유증은 이어졌다. 친노 진영과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사사건건 충돌했고, 최고위원회는 매번 시끄러웠다. 결국 전당대회가 끝난 지 10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 당이 깨졌다. 호남이 주축이 된 비노 의원들은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을 새로 만들었다. 전당대회의 갈등이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야권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 난타전 수위 높아지는 국민의힘 3·8 전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는 집권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전당대회다. 국민의힘은 5년 만에 여당이 됐지만 이준석 전 대표 사태 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제대로 된 당 지도부를 갖추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모두가 지켜본 것처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공식 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시끄러웠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20일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TV 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교안, 천하람, 김기현, 안철수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후보 간 공방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김기현 후보는 16일 호남 합동연설회에서 안 후보를 향해 “민주당식 못된 DNA”라고 공격했고, 안 후보는 김 후보의 KTX 울산 역세권 부동산 투기 의혹 문제를 꺼내 들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까지 공개 경고에 나섰지만, 두 후보 간 난타전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후보의 선전은 친윤 진영에 부정적인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권 교체를 위해 일단 하나의 깃발 아래 모였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완전한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이번 전당대회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불안’은 분열의 씨앗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에 나서는 건, 결국 불안 때문이다.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이 당 소속으로는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이다. 2·8 전당대회 과정과 그 이후 국면에서 호남의 비노 의원들이 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 진영과 갈등을 빚었던 것도 바로 이 이유다. 당시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향했던 한 의원은 “당시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물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이대로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생겼던 건 당연하다”고 회상했다.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 진영은 이 불안을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친노 패권주의’라는 우려는 더 커졌다.
결국 친노 인사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설령 공천을 받더라도 당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호남 의원들은 탈당과 신당 창당을 택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호남에서는 참패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호남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38석을 얻었다.
그렇다면 3·8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은 어떻게 될까. 이미 분열의 기운은 감지됐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창당 가능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친윤과 비윤(비윤석열) 진영의 갈등은 여권에서조차 “봉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친윤과 비윤 사이 중간 지대에 있는 의원들도 이미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경원 전 의원을 규탄하는 초선 의원들의 연판장은 당초 43명이 이름을 올렸지만, 종국에는 50명까지 늘어났다.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비윤으로 낙인찍힐까 봐 “내 이름도 포함시켜 달라”는 의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의 분열을 막는 구심력은 이런 불안과 공포를 없애는 데서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계파에 상관없이 공정한 경선과 공천이 이뤄지고, 당이 하나로 뭉쳐 선거를 치르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누가 당을 뛰쳐나가겠느냐”고 했다. 반대로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한 공천 가능성이 커지고, 당의 총선 승리가 불투명하다면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새로 뽑히는 여당의 선장이 과연 불안을 없앨 것인가, 아니면 더 키울 것인가. 그 결과에 여권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