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吉祥)이란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다. 길(吉)은 선(善)한 것, 상(祥)은 아름답고 기쁜 일의 징조다. 좋은 기운을 줄 것으로 믿는 대상들을 생활 속에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삶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다.’
서울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길상 특별전’에는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과 복을 비는 상징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 중 입구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집이나 가게 출입문 위에 걸어두었던 ‘북어 실타래 장식물’이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길상 특별전’에 전시된 ‘북어 실타래 장식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명태는 말라 비틀어져 북어가 되어도 눈이 굉장히 맑아요. 그래서 명태에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명태에 흰색 명주실을 감아놓은 형태 자체만으로도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느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일월오봉도를 활용한 디자인 문화상품. 버금 스튜디오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금제유물을 활용한 디자인 문화상품. 버금 스튜디오 제공
―우리 문화재를 소재로 한 아트상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조선왕조의궤를 족자로 만든 문화상품. 버금 스튜디오 제공
“프랑스가 반환한 ‘조선왕조의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기념 굿즈였습니다. 영조의 행차를 그린 도감을 아트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조의 행차도는 사람들이 실제 행차한 기록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이 그림은 행차를 하기 전에 행렬 계획을 짠 설명도입니다. 왕과 왕비는 어디에 있고, 신하들은 몇 번째로 오고, 누가 말을 타고, 걸어서 가는지를 정해주는 그림이지요. 원래 책에 한 쪽씩 붙어 있는 그림을 스캔해서 전체 행렬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5m 크기의 족자로 만들었습니다. 총 500세트를 디자인해서 각 15만원에 팔았습니다. 왕실에서 쓰던 상아(象牙) 장식을 달아서 족자를 꾸미는 등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행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라 소장 욕구가 폭발했는지 금세 매진되더군요.”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조선왕조의궤를 족자로 만든 문화상품. 버금 스튜디오 제공
“일본에 가면 손을 흔들고 있는 고양이 인형 하나씩 꼭 사오고, 뉴욕에 가면 ‘I♥NY’ 로고가 적힌 기념품을 사오잖아요. 우리나라도 한국을 상징하는 인상적인 기념품을 꼭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릴 적에 보면 구멍가게마다 문 위에 걸려 있던 북어가 생각났어요. 저는 이 북어가 굉장히 디자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태가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서 잡귀들이 무서워서 도망칠 것 같더라고요. 저는 북어에 명주실을 감아놓은 형태 자체만으로도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Good Luck Fish 굿럭피쉬/명태. 버금 스튜디오 제공
“명태는 한국인들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생선이었습니다. 신선한 명태는 생태탕을 끓여먹고, 얼리면 동태탕으로 끓여먹어요. 명태를 반건조한 게 코다리이고, 명태의 새끼는 맥주집에서 안주로 최고인 노가리죠. 명태를 겨울 산속 눈바람에 얼렸다가 말렸다가 해서 만드는 게 황태예요. 명태알로는 명란젓을 만들고, 명태 창자로는 창란젓을 담궈요. 하나도 버리는 게 없어요. 명태는 동해안에서 그물만 던지면 어마어마하게 잡혔던 생선입니다.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던 서민적인 음식이었죠. 이렇게 친숙한 생선이라 집이나 사무실 이사를 하거나 차를 바꿨을 때 고사를 지내고, 명주실을 묶어서 문 위에 걸어놓거나, 트렁크 안에 넣어두었죠.”
Good Luck Fish 굿럭피쉬/명태. 버금 스튜디오 제공
“처음엔 명태 사진을 을지로에서 목조각하시는 분에게 가져가서 깎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무로 깎은 명태를 이용해 금형으로 제작해봤지요. 진짜 명주실을 감아보려고 했는데, 금속에 명주실을 감으니 미끄러워 다 풀려버렸습니다. 금형으로 제작한 명태가 귀엽고 예쁘긴 한데 제가 조각한 것이 아니라 그만두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3D프린터로 제작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원에서 3개월간 3D프린트 프로그램을 배워서 직접 디지털로 명태를 조각했다. 명태 위에 명주실이 감긴 형태를 그대로 3D 디지털로 조각해냈다. 명태와 명주실을 같은 재료로 하되 색상을 다양하게 해서 출품했더니 젊은 사람들까지 열광했다. 골드, 그린, 화이트, 블루 등 각자 좋아하는 색깔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Good Luck Fish 굿럭피쉬/명태. 버금 스튜디오 제공
그가 디자인한 명태 아트상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광공사가 주최하는 한국관광기념품 공모전에 출품을 해서 동상을 수상했다. 리움미술관이 코로나 이후 재개관을 하면서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아트상품으로 그의 ‘굿럭피쉬/명태’를 팔았는데 3000개가 순식간에 팔렸다고 한다. 이 아트상품은 지난해 가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공예트렌드페어에서도 선보였다. 명태는 3D프린터로 만든 모양이지만 자석이 달려 있어서 아파트의 철제 출입문에 잘 붙게 만들어졌다.
“공예트렌드페어에 온 관람객이 첫날 10개를 사갔는데, 다음날 또 와서 색깔별로 10개를 사가는 거예요. 어디에 선물하실 거냐고 물었더니 아들, 손자, 며느리, 친척, 친구들 줄 거라며 누구 대문은 빨간색이어서 이 색깔이 어울리겠다고 하더라구요. 명태를 선물한다기보다는 ‘복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명태와 명주실을 선물하기에는 좀 꺼림칙하지만, 예쁜 액세서리용 아트상품이 재미와 의미가 담긴 선물로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Good Luck Fish 굿럭피쉬/명태. 버금 스튜디오 제공
―MZ세대까지 명주실 명태 아트상품에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패턴 구매자 분석을 해보면 20대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일상 속 샤머니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면 아트상품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약간 무거울 수 있는 메시지를 유니크하고 재미있게 풀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도 좋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게 웃긴 점은 기능이 없는 물건이라는 점이죠. 마우스나 펜, 컵처럼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이잖아요. 복을 기원해주고, 액을 막아주는 상징일 뿐입니다. 댓글에 보면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었대’하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설명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우리 문화가 끊어지지 않고 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혹시 물고기 모양의 민속 선물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사실 물고기에 대한 상징은 모든 종교에 다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물고기는 밤에도 눈 뜨고 잔다고 해서 수행자의 상징입니다. 또한 눈을 뜬 물고기는 재물을 지켜준다고 해서 우리나라 자물쇠에는 거의 100% 물고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는 연못의 돌에도 물고기가 조각돼 있고, 이어지는 누각에는 용이 새겨져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잉어가 오랜 수행을 하면 용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연중 디자인스튜디오 ‘버금’ 대표
“예전에 제가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아 절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댓돌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들어가셨길래 나오실 때 편하시라고 신발 방향을 밖으로 돌려놓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스님에게 혼이 났습니다. 손님이 벗어놓은 신발을 돌려놓는 것은 일본에서 온 문화지 우리 문화가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걸 합리적인 예절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온 손님이 오랫동안 여유있게 이야기도 하고, 천천히 가시라는 의미에서 신발을 돌려놓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나갈 때 신발 신기에 조금 어렵겠지만, 손님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무르게 배려하는 문화라는 설명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엔 관심없다가도, 한국의 문화에 담긴 내면의 철학을 알고 나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에 한국적 문화 아트상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다음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 ‘효자손’입니다. 효자손은 등에 손이 안 닿는 곳을 긁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을 때 긁어주는 도구잖아요. 그냥 ‘등 긁게’라고 하면 될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효자손’이라는 이름을 붙였거든요. 저는 효자손이라는 말이 너무 좋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맥락에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효자손은 낙엽을 긁는 도구나, 밭을 가는 쟁기같은 농기구처럼 생겼습니다. 그걸로 등을 긁으면 진짜 시원합니다.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자손’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한국적인 문화상품이 되는 것이죠. 댓돌에 신발을 거꾸로 돌려놓지 않는 것처럼, 한국적인 개념과 스토리텔링이 모티브가 되는 아트 디자인 상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