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이타미 주조의 ‘담뽀뽀’
이정향 영화감독
음식을 대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 속에, 담뽀뽀(민들레)라는 젊은 과부가 최고의 라면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담뽀뽀를 동정해서 단골들이 팔아주니 망정이지, 부족한 맛이다. 우연히 손님으로 들른 트럭 운전사 고로는 라면 맛에 참견했다가 그녀를 도와야 할 처지가 된다. 손님을 맞는 순간부터, 음식을 내고 빈 그릇을 치우는 과정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자 담뽀뽀는 고로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최고의 맛에 인생을 거는 라면집이 일본 전국 곳곳에 박혀 있다. 이런 장인들의 식당일수록 협소하고 낡았다. 또한 분점을 내지 않는다. 일본의 식당 앞 입간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가 ‘수제(手製)’다. 이른바 ‘핸드메이드’. 소스나 양념 같은 사소한 재료에도 수제라는 걸 강조한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땐 굳이 저렇게까지 밝히나 했는데,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공통된 맛보다 개인의 손맛에 점수를 주는 일본인의 선호를 알고 나니 ‘수제’라는 뜻이 와닿았다. 변두리의 작은 가게라도 그곳만의 비법과 맛이 있고, 그것을 알아주는 단골들이 그 가게를 지켜낸다.
음식에 집착하는 온갖 군상을 보여주던 영화는 엄마 젖을 빠는 아기를 보여주며 끝난다. 음식이란 곧 생명줄이다. 불순물 제로인 엄마 젖처럼 정결하고 정성스러워야 한다. 10여 년 전, 엄마와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내가 모든 걸 준비한 효도 관광이었다. 일본 온천도 가고, 비싼 여관에도 묵고, 쇼핑도 모시고 다니며 열흘 넘게 봉사했다. “엄마, 뭐가 제일 좋았어?” 생색내고자 한 질문에 일흔이 넘은 엄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밥 안 하는 것! 내 평생 이렇게 오랫동안 오늘은 또 뭐로 밥상을 차릴지 고민 안 해본 건 처음이야. 너무 좋아!”
식당도 마찬가지다. 비싼 곳이 맛있는 건 당연하다. 비싼데 맛없으면 용서가 안 된다. 싸고 맛없으면 그럴 수 있다. 싼데 맛있으면 축복이다. 내가 사랑하던 축복 같은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다. 훌륭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단골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곳들인데…. 사장님, 어디서 어떻게 지내세요?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