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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숙성 술맛 독특”… 오픈런 부른 한국산 위스키

입력 | 2023-02-23 03:00:00

국내 첫 증류소 세운 김창수씨
“스코틀랜드 양조장 102곳서 퇴짜
일교차 커 새로운 매력 위스키 가능
증류소 더 세워 관광상품 만들 것”



‘김창수위스키’ 김창수 대표가 16일 경기 김포시 증류소에서 최근 ‘오픈런’으로 화제가 됐던 ‘김창수위스키’ 3호 병을 들어 보였다. 증류소는 숙성 중인 오크통으로 가득했다. 2020년 설립된 이곳에선 매년 1만2000L 규모의 위스키를 자체 생산한다. 김포=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위스키 제조법을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건너갔어요. 100번 넘게 거절당했지만 오히려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16일 경기 김포시 ‘김창수위스키’ 증류소에서 만난 김창수 대표는 ‘국내 1호 위스키 디스틸러’(증류주 생산자)다. 그가 지난해 4월 처음 내놓은 위스키는 내놓을 때마다 오픈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GS리테일, 홈플러스 등에서 한정 판매되는 이 위스키는 한 병에 22만 원이지만 전날부터 밤새 기다리는 ‘폐점런’까지 나타났다. 첫 국산 위스키란 점과 한글 패키지 등이 젊은 힙스터 코드로 통용되며 구매 경쟁에 불이 붙어서다.

오크통에 10년 이상 담가 두는 고숙성 위스키가 발달한 스코틀랜드와 달리 일교차가 큰 한국에선 위스키 제조가 불가능하다는 게 그간의 인식이었다. 날씨 변화 폭이 크면 원액 증발로 숙성도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스무 살 때부터 품었다. 주류회사 영업사원, 바텐더 등으로 일하다가 2014년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모은 돈은 1000만 원이 전부였다. 정식 교육 과정을 밟을 형편은 못 되어 무작정 양조장에 가서 ‘제조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들판에 텐트 치고 노숙하면서 6개월간 스코틀랜드에 있던 102개의 위스키 양조장을 모두 돌았지만 전부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소득이 없진 않았다. 당시 현지 양조장을 방문했던 일본 지치부 위스키 증류소 직원이 위스키가 좋다고 무모하게 덤벼드는 동양인 청년을 눈여겨봤다. “그렇게 위스키가 좋으면 우리한테 와서 배워 봐라”란 허락에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증류소를 찾았다. 위스키 품평회 ‘월드 위스키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고품질 위스키로 꾸준히 인정받고 있는 곳이었다. 그는 “국내 기후와 흡사한 환경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아직도 틈틈이 찾아 계속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후 증류소 부지를 찾고,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제조 기기 등을 들여와 2020년 국내 첫 위스키 증류소를 세웠다.

김 대표가 만든 위스키 라벨에는 ‘우리나라도 위스키 만든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 ‘한국에선 안 된다’고 할 때마다 오히려 더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대만도 우리나라처럼 일교차가 크지만 고품질의 저숙성 위스키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했다. 그가 현재 제조 중인 위스키 역시 1∼3년간 담그는 저숙성 위스키다. 그는 “위스키 기준을 ‘스카치 위스키’에만 둬서 그렇지 저숙성 위스키도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독 한국에서 위스키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 높은 주세와 규제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기후 제약으로 가뜩이나 노하우도 없는데 위스키에만 붙는 무선식별시스템(RFID) 같은 규제로 가격까지 뛰니 수지타산이 안 맞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 대만은 위스키 문화가 발달해 있고 자체 증류소도 많다.

그의 다음 목표는 연내 새로운 증류소를 여는 것. 현재 장소 선정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을 접촉하고 있다. 김 대표는 “향후 위스키 기술을 활용한 소주도 만들어보고 싶다”며 “증류소 관광코스를 만들어 위스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