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스노보드 크로스 이제혁, 내달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후천적 지체장애 등 두 번 바뀐 운명… 5년 좌절 딛고 스노보드 다시 시작 국내 장애인-비장애인 석권 이어 유로파컵 우승 등 ‘월드클래스’ 올라
경기 당일 이제혁이 보드를 타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제혁(26·서울장애인체육회)은 10일 강원 횡성군 웰리힐리파크에서 열린 제20회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에서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일반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혁은 전날 같은 곳에서 열린 제75회 전국종별스키선수권대회에서도 세종스키협회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한 상태였다. 장애인 대회와 비장애인 대회에서 모두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 이제혁이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가 끝난 13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제혁은 사흘 전 열린 이 대회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일반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후 그의 운명은 두 번 바뀌었다. 첫 번째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12년 1월이었다. 이제혁은 휘닉스파크배 스키·스노보드 크로스 대회에 참가했지만 스노보드 중등부 최하위에 그쳤다. 이제혁은 “훈련을 열심히 안 해놓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때 처음 ‘스노보드를 잘 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혁은 “세상에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 같은 거짓말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체육 시간에 벤치에 앉아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청담고를 1년 만에 자퇴했고 스노보드를 향한 꿈도 접었다.
두 번째로 운명이 바뀐 건 평창에서 겨울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열렸던 2018년 3월이었다. ‘아는 형’으로 지내던 홍진수 대한장애인스키협회 코치(31)가 대회 입장권을 주면서 “구경이나 한번 해봐”라고 권했다. 이제혁은 “새벽부터 일어나 툴툴거리며 서울에서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으로 향했다. 그러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는데 ‘정말, 정말 보드가 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홍 코치 도움을 받아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한 이제혁은 2021∼2022시즌 유로파컵 네덜란드, 핀란드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월드 클래스’로 올라섰다. 한국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건 이제혁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석 달 후 열린 2022 베이징 패럴림픽에서는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신명수 장애인스노보드 국가대표 감독(44)은 “10m 이상을 뛰는 ‘프로 점프’ 기술만큼은 (이)제혁이가 세계 장애인 스노보드 크로스 선수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왼발 장애가 있어 오른쪽 방향 가속에 어려움도 있지만 재능이 뛰어나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