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AP 뉴시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지난달 23일 파리 나시옹 광장에서 빵집 운영자들이 바게트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들이 프랑스의 상징인 바게트를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목도한 어떤 이는 프랑스 혁명 초기 굶주린 평민들이 “빵을 달라”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후 처음으로 빵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광경이라 전했다.
기후위기로 밀의 수확량이 감소했다. 더욱이 중국, 인도에 이어 전 세계 밀 생산량 3위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면서 밀은 물론이고 달걀, 버터,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원자재 값과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다. 프랑스에서 전기 요금은 가스 가격에 연동된다. 따라서 오븐 등의 전기 사용량이 많은 빵집들이 줄폐업을 하게 된 것. 정부의 미온적 대책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 단위로 빵집 주인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프랑스에서 바게트는 우리가 먹는 쌀과 같은 주식이나 다름없다. 매일 오전 7시면 동네 빵집에 바게트가 준비되고 길게 늘어선 행렬은 저마다 바게트를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한다. 프랑스인들의 아침은 바게트에 버터나 잼을 발라 커피 한 잔과 함께 먹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 본식 옆에 나오는 바구니에는 바게트나 호밀 빵이 담겨 있다. 식사할 때 이를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 없는 사람부터 부르주아까지 누구나 바게트 하나라도 매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바게트 가격을 엄격히 통제하고 이를 가게 밖에 공시하도록 했으니 바게트는 평등의 상징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장인의 손으로 현장에서 빵을 만드는 빵집에 한해 ‘장인의 빵집(Artisan Boulanger)’ 간판을 달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런데 이런 ‘장인 빵집’을 찾던 시민들도 생활이 팍팍해지자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최근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이 빵을 직접 구워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있다. 공장에서 생산된 바게트를 구입하는 이들도 늘었다.
‘바게트의 장인 노하우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불과 3개월 전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바게트를 구울수록 손해를 보는 빵집들이 경제난으로 파산하거나 폐업하는 일이 속출한다. 빵집 없는 마을도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폐업한 제빵사 쥘리앵 베르나르 레냐르 씨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빵의 위기는 곧 프랑스의 위기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