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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2·8독립선언서 ‘육필 영문본’ 104년만에 발견

입력 | 2023-02-23 03:00:00

거사前 유학생이 쓴 초고 가능성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독립선언서 육필(肉筆) 영문본(육필본·사진)이 104년 만에 처음 발견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하나뿐인 육필본 2·8독립선언서로, 춘원 이광수(1892∼1950) 등 거사를 주도한 일본 도쿄 조선인 유학생이 직접 쓴 선언서 초고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에서 대여해 온 자료를 분석하다 육필본을 발견했다고 22일 밝혔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도쿄 YMCA 강당에서 조선인 유학생 600여 명이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한 사건이다.

필기체로 된 6쪽 분량의 육필본은 첫줄 제목에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조선독립선언)”라고 썼다. 한일 강제병합을 두고 “a great blot o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세계 흥망사에 특필할 인류의 큰 수치이자 치욕)”라고 표현하고, “we shall fight to the last drop of blood(일본에 대해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라고 쓰는 등 2·8독립선언서 국문본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육필본의 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1919년 1월 말경 유학생들이 거사 전 대한인국민회로 발송한 영문 초고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말-영어-일본어 선언서 중 유일 육필본



2·8독립선언서 육필 영문본 발견
“독립운동, 해외동포와 연대 보여줘”



2·8독립선언서는 이광수와 최팔용(1891∼1922)을 비롯한 유학생들이 함께 우리말(국한문 혼용)로 작성한 뒤 각국 대사관과 언론에 배포하기 위해 영어와 일본어로도 작성했다. 이광수는 1월 31일 중국 상하이로 파견됐고, 영문본 선언서는 2월 8일 오전 각국 대사관에 뿌려졌다. 일본 외무성 자료인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에 따르면 배포된 영문본은 타자기로 친 원고였다. 선언서 분석을 맡은 진주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은 “육필본이 미국으로 보내진 건 선언서를 타자기로 치기 전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3·1독립선언서도 최종 서명자가 확정되기 전 만주로 보내진 바 있다. 이명화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이광수가 자신과 긴밀한 관계였고, 당시 미국에 있던 안창호의 대한인국민회에 미리 따로 이 육필본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수는 당시 일본에 머물던 미국 선교사 조지 섀넌 매큔(한국명 윤산온)으로부터 소개받은 미국인 박사에게 영문본을 감수받았는데, 육필본을 쓴 이가 감수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8독립선언서의 육필 원본은 이 선언서가 유일하다. 독립기념관은 등사본인 국한문 혼용본과 육필이지만 사본인 일문본 선언서를 1980년대 입수해 소장하고 있다. 영문 인쇄본은 2014년에야 ‘3·1운동의 진상과 독립선언서’라는 소책자에 실린 채 발견됐다.

이번 육필본은 미주사회에 배포된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진 연구원은 “육필본과 함께 발견된, 타자기로 친 원고와 인쇄본 등 3가지를 비교한 결과 ‘육필본→타자기로 친 원고→인쇄본’ 순으로 오탈자나 문법적 오류가 교정된 흔적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독립운동이 미주와 만주, 러시아 등 동포사회와 연대해 벌어졌다는 걸 육필본은 다시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은 올해 3·1절 104주년을 맞아 이번 육필본을 비롯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두루 수집해온 독립선언서 원본 32점을 충남 천안시 기념관 밝은누리관에서 27일 오전 10시 반 공개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