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인력난] 외국인 인력 충원한 현대삼호중공업 활기 되찾아
한 외국인 근로자가 16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 영암=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16일 오전 10시 전남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는 철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소리로 요란했다. 휴게소에서 만난 선박블록 검사팀의 이병준 팀장(48)은 “1년 반 만에 팀 막내를 받으면서 현장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팀장이 말한 팀 막내는 파타난 씨(32) 등 태국에서 온 네 명의 용접공이다.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 특정활동(E7) 비자를 받아 지난달 20일 검사팀에 합류했다.
검사팀이 하는 일은 배에 들어갈 블록을 최종 점검하는 것이다. 용접과 절단 등 특기를 가진 인력 16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만 해도 12명으로 운영됐다. 넘치는 일거리에 일주일에 4번씩 잔업(오후 6시부터 9시까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용접공, 도장공 등 특정활동(E7) 비자 외국인 인력을 69명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목표치 600명의 11.5% 수준이다. 서류 검토와 행정절차 지연 문제로 충원 인력이 한국 땅을 밟는 데 최소 5개월이 걸렸다.
외국인 조선 인력, 올해 154명 들어와… 현장선 “한시름 덜었다”
인력 부족에 건조 차질 조선업
외국인 비자 신속 심사로 숨통
“숙련공 비자 활용 더 확대해야”
판야(45), 삼란(43), 산찰(46·왼쪽부터) 씨 등 올해 한국에 입국한 태국 용접공 3명이 22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들어 현대삼호중공업에는 용접공 등 총 150여명의 특정활동(E7) 비자 인력이 들어왔다. 현대삼호중공업 제공
이달 초 입국해 현장 배치 전 실습 교육을 받고 있던 타나깐 씨(48·태국)는 “이전에 대만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도 일했는데 한국(조선소)은 그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선망의 일자리”라고 했다.
이병준 팀장은 “지난 14년간 청춘을 바친 조선소가 이젠 한국 젊은이들이 꺼리는 기피 직장이 됐다는 사실에 많이 씁쓸했다”면서도 “해외에서라도 새로운 일꾼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조선소에 생기가 돌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 빨라진 외국인 인력 충원 속도
현대삼호중공업은 2023년이 시작된 지 불과 45일 만에 연간 수주목표액 3조3000억 원을 32% 초과 달성했다. 수주잔량(남은 일감)은 3년 치를 넘어섰다. 독(배를 만드는 작업장)은 물론이고 마무리 공정을 진행하는 안벽(생산된 배를 대놓는 부두 시설)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컨테이너선과 같은 초대형 선박들로 가득했다. 조선소 상징물인 골리앗크레인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그럴 때마다 울리는 음악 ‘엘리제를 위하여’가 계속 들려왔다.외국인 인력 충원을 위한 행정절차에만 4개월 이상 걸렸던 게 인력난의 원인 중 하나였다. 다행히 지난달 법무부가 조선업 비자 신속 심사 제도를 시행하는 등에 힘입어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작년 10여 명을 충원하는 데 만족했던 현대삼호중공업에도 올해만 태국인 72명, 베트남인 82명 등 총 154명의 E7 기능 인력이 들어왔다.
● “E9의 E7 비자 전환 기회도 넓혀줬으면”
현장에선 “한시름 덜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하청 생산직 인력은 22일 기준 내국인 6489명, 외국인 2106명 등 총 8595명이다. 올해 필요한 인력은 외국인 인력 2454명을 포함한 9411명. 현대삼호중공업 측은 외국인 인력의 경우 현재 충원 속도라면 부족한 350명가량을 상반기(1∼6월) 중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HD현대그룹 소속 조선업체들의 외국인 인력 수급을 총괄하는 김동일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실 전무는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협력사 외국인 인력 확보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의 협력사 태진을 방문했을 때도 활기를 찾아가는 현장의 분위기가 체감됐다. 전체 인원이 150명 남짓인 태진에는 이달 충원된 3명을 포함해 8명의 외국인 직원이 있는데 대부분 기타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왔다. 여태곤 태진 대표는 “E9과 같은 다른 비자를 가진 외국인 인력 중 근무 기간 등 특정 조건을 갖추면 E7으로 전환하는 숙련기능인력(E-7-4) 제도를 활용할 기회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근의 다른 협력사 대표 A 씨도 “지난달 한국인인 젊은 직원 한 명을 고용했는데 딱 일주일 사무실에 앉아있더니 ‘이건 아닌 것 같다’면서 그만두더라”며 “수주 호황이 실적으로 반영돼 근로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때까진 외국인 인력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제조업 전체 인력난, 결국 외국인으로 채워야
16, 17일 이틀간 전남 영암 일대에서 만난 조선업체 관계자들은 “지금으로선 사실상 내국인을 충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 인구가 줄고 있는 데다 정보기술(IT) 업종과의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취업 선호도가 떨어지는 조선소에 제 발로 찾아올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였다.이런 현상은 제조업의 다른 직군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 침체 등으로 고용 한파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유독 제조업 분야는 ‘일자리 미스 매칭’으로 생산직 구인난이 심화하고 있다.
플랫폼 경제가 뜨면서 도심지에서 일할 수 있는 물류센터나 배달업이 젊은 생산직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특히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제조업보단 임금이 좋고 도심에 있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며 “다른 선진국에서도 그랬듯이 외국인 인력을 구원투수로 불러들이는 현상이 당분간 한국 제조업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