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장충 경기 승리 후 기뻐하는 흥국생명 선수단.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배구 여제’ 김연경(35)과 외국인 선수 옐레나(26·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항상 ‘대각’에 서도록 로테이션을 짰던 겁니다.
원래 배구에서는 아웃사이드 히터(OH)와 미들 블로커(MB)는 같은 포지션끼리 오퍼짓 스파이커(OP)는 세터(S)와 대각에 서는 게 정석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시는 분은 아래 그림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김연경은 후위 왼쪽, 옐레나는 전위 오른쪽으로 대각입니다.
그러면서 이 경기 2세트 흥국생명 서브는 이원정(23·S) → 김연경 → 김나희(34·MB) → 옐레나 → 김다은(22·OH) → 이주아(23·MB) 순서가 됐습니다.
이렇게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에 선수 한 명이 들어가는 건 두 선수가 동시에 코트 위에 있던 103세트 가운데 9번(8.7%)밖에 쓰지 않았던 카드였습니다.
나머지 한 세트는 지난달 15일 광주 방문경기 2세트였는데 이날 흥국생명은 경기 내내 이 로테이션을 썼고 결국 3-1 승리를 거뒀습니다.
옐레네와 김연경 사이에 김나희가 있습니다.
흥국생명이 이번 시즌 가장 많이(81세트) 쓴 로테이션은 김연경과 옐레나가 붙어다니는 방식입니다(위 그림).
두 선수가 붙어 다니면 전체 로테이션 6번 가운데 2번은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서지만 또 2번은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자리하게 됩니다.
신용준 흥국생명 단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팬들 사이에서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가 같이 있는 게 아니고 전후로 나눠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연경(왼쪽)과 옐레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실제로는 두 선수가 모두 전위에 있을 때는 흥국생명이 연속 득점을 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 해당 시점 로테이션을 유지한 상태에서 계속 경기를 치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두 선수가 전부 후위에 있을 때는 연속 실점을 당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이럴 때는 +/-를 따져서 어느 쪽 케이스가 많았는지 알아보면 됩니다.
이럴 때는 김연경과 옐레나가 붙어서 돌아갑니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나란히 선 상태로 맞이한 랠리는 총 3186번입니다.
이 중 1224번(38.4%)은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섰고, 975번(30.6%)은 두 선수가 전부 후위에 있었습니다.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있는 동안에는 673점을 올리는 동안 551점을 내줘 122점 이득을 봤습니다.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있을 때는 478득점, 497실점으로 19점 손해입니다.
‘전-전’ 이득이 ‘후-후’ 손해보다 훨씬 큽니다.
15점제로 진행하는 5세트를 빼면 세트당 랠리는 평균 46.3번입니다.
이 중 52.3%에서 득점한다는 건 평균 24.2점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두 선수가 대각에 섰을 때 그러니까 두 선수 중 한 명은 반드시 전위에 있을 때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때는 전체 580랠리 중 300득점으로 51.7%였습니다. 평균 23.9점입니다.
어느 로테이션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지만 ‘전-전’ 이득은 작습니다.
이 때는 전체 랠리 483번 가운데 55.7%(269번)이 흥국생명 득점으로 끝났습니다.
이러면 평균 25.8점으로 이미 세트가 끝나게 됩니다.
이 로테이션이 효과적인 건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서는 랠리가 16.8%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앞서 보신 것처럼 12세트 가운데 11세트 승리입니다.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에 선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또 같은 경기를 서로 다른 로테이션으로 치르는 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라 다른 경기에서 이 로테이션을 꺼냈다고 결과가 같았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가 좋은 로테이션을 이렇게 적게 쓰고 있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오늘(23일)은 새로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게 된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53)이 데뷔전을 치르는 날입니다.
구단에서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소개한 아본단자 감독이 어떤 로테이션 카드를 들고 나올지도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