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연락을 받은 60대가 피싱범 지시를 따르다가 수상한 생각이 들어 경찰 상담까지 받았지만 결국엔 사기에 당하고 말았다.
피해자가 경찰에 어디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는지는 당사자와 경찰 측의 입장이 다르다.
23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60대 A 씨는 지난달 30일 낯선 연락을 받았다.
자신을 가상화폐 거래소 직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는 “최근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본 것으로 아는데, 코인으로 보전해드리다”고 제안 했다.
실제로 A 씨는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본 적이 있고, 딱히 ‘추가 투자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어서 솔깃했다.
상대는 코인을 현금화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라며 주민등록증 사본을 요구하는가 하면, ‘인증’을 위해 A 씨 은행 계좌에 1원이 입금됐으니, 입금자명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또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잘못 송금한 돈이니까 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민원실 복도에서 그는 한 경찰관을 만나 “내가 전에 주식 투자를 했는데 손실보전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내 계좌로 영문을 모르는 돈 2300만원이 입금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유출된 적이 있는지?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A 씨는 ‘돈을 되돌려주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같은 날 은행을 찾아가 2300만원을 요청 받은 계좌로 송금했다.
문제는 1주일 뒤에 드러났다. A 씨는 제2금융권에서 “신용거래정보가 변동됐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명의를 도용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기범이 A 씨 신분증을 도용하고 본인인증 절차까지 마친 후 제2금융권에서 입금한 대출금을 착오송금인 것처럼 속여 가로채 간 것이었다. 결국 A 씨는 자신이 빌리지도 않은 23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A 씨는 다시 경찰서를 찾아가 “경찰이 입금하라고 해서 입금했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따졌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이에 대해 수원남부서 관계자는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그날 그분이 민원실에서 번호표 뽑고 다른 분처럼 대기하고 계셨던 게 아니라, 사이버수사팀 상담직원이 잠깐 화장실 가는 틈에 복도에서 물어 본 것”이라며 “그분이 ‘2300만원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서 본인은 피해 입은 사실도 개인정보 유출된 사실도 없다고 하니, 저희가 금융기관이 아니라 입금자가 누군지 알 수 없기에 은행의 착오송금반환 제도를 안내해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그분은 담당자의 이야기를 오해 하셨는지 은행 창구에서 입금을 하라고 알아 들으셨다고 한다”며 “본인은 개인정보도 다 유출됐다는 부분들을 처음부터 알려줬었다고 말씀 하시는데, 처음에 왔을 때랑 다르게 말씀 하시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현재 수원남부서 사이버수사팀에서 지난 13일 정식으로 접수해 수사중에 있다. 경찰은 돈이 건너간 계좌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