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조정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기준금리 3.5%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5%대 고물가는 여전하지만 눈앞의 현실로 닥친 경기 둔화, 가계부채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조만간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금리 인상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 놨다.
이로써 한은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진 사상 첫 7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레이스를 멈췄다. 한은은 재작년 8월부터 1년 반 동안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번 금리 동결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1900조 원의 빚을 진 가계는 늘어난 이자 부담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1000조 원 넘는 부채에 짓눌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폐업도 속출한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1.7%에서 1.6%로 낮춘 것도 내수 침체, 수출 부진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적 기준금리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변수다. 경기가 둔화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소비·고용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물가 하락을 막고 있다. 경기 호조와 고물가가 평행선을 그리며 계속되는 이른바 ‘노랜딩’ 현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5.0∼5.25%로 0.5%포인트 높일 가능성도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물가 안정 목표를 섣불리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오일쇼크가 닥친 1970년대에 미 연준은 경기 상황을 의식해 금리 인상과 동결을 반복하다가 물가 관리에 크게 실패한 적이 있다. 한은은 이런 ‘스톱 앤드 고(Stop and Go)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국내외 변수에 유연하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