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교착 상태, 무산 우려까지 저출산 저성장 시대, 현 연금제 지속 어려워 민간 주도의 연금 구조 강화 필요하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연금개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개혁안을 추진 중이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돌연 논의를 중단했다. 국민연금에 내는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인상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이뤘다고 하자 국민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개혁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잘 알려졌다시피 국민연금은 2050년대 중반쯤 기금이 완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 2030세대의 은퇴 시점이다. 이들이 평생 내는 연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청년들한테선 국민연금을 아예 없애자는 말까지 나오고, 기성세대는 자신들 급여가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사정이 제각각인 수많은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 이런 제도를 굳이 왜 만들었는지 의아해할 만도 하다.
국민연금은 연금이라 불리긴 하나 개인연금과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노후설계 제도다. 사적연금의 경우 내가 붓는 돈은 온전히 나를 위해 적립된다. 공적연금은 아니다. 우선적으로 윗세대 부양에 쓰인다. 마찬가지로 나의 은퇴 후 소득원은 아랫세대다. 그렇지 않고선 연기금이 고갈될 이유가 없다. 즉, 국가 주도의 ‘세대 간 소득 이전(移轉)’ 시스템이 국민연금인 것이다. 노인 지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강보험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이에 비해 요즘 청년들 현실은 너무도 암울하다. 집도 직장도 가정도 없는데 연금마저 날리게 생겼다. 시대가 변했다. 명실공히 최악의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지금의 한국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1980년에 2.82명, 1990년에 1.57명에서 올해 0.78명까지 추락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9명의 절반이다. 84세에 육박하는 기대수명은 그사이 세계 최고가 됐다. OECD 국가들 중 일본, 스위스 다음이다. 2060년엔 90세라고 한다. 이대로 가면 일손이 달려 경제가 결국 꼬꾸라질 수밖에 없다. 필리핀한테도 뒤처질 날이 실제 그리 머지않았다. 심각한 상황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국민연금의 메리트도 더 이상 없다. 국민연금이 제대로 굴러갈 만큼 파이가 자라지 않는다. 각자 저축해서 노후를 준비하는 편이 미래 세대에 그 부담을 넘기는 방식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인 시대가 됐다. 고도성장기와 정반대 국면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연금에 자꾸 자원을 투입하면 일하는 세대의 몫을 줄이고 생산성을 낮춰 전체 파이가 작아지고, 이것이 또 세수 감소와 연금수지 적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촉발한다. 바로 이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 일본의 출산율도 1.3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청년들 관점에서 제도를 고쳐야 한다. 이제는 민간 주도의 연금 구조를 강화할 때다. 인구 쇼크를 먼저 경험한 다른 선진국에서도 직장연금과 개인연금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이 받은 쇼크는 그 몇 배 크기다. 더 선제적이고 더 강력한 수술이 필요하다. 노후 준비는 개인과 사적연금이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고, 국가와 공적연금은 사회안전망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청년들을 개인별 적립 연금으로 유도하는 한편, 기존의 국민연금은 ‘덜 받는’ 쪽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그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 원체 경직적인 제도이다 보니 여러 방면에서 구조조정이 가능하겠지만, 일단 수급 개시 연령부터 올려야 한다. 기대수명과의 괴리가 상식적으로도 너무 커졌다. 일본 수준에는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금도 형편에 맞게 최대한 선별 접근해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