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이 나를 밖으로 내몰지만, 어디로 가얄지 알 수 없구나.
걷고 또 걸어 도착한 이 마을, 대문 두드리고는 우물쭈물 말을 못한다.
주인이 내 마음 알아채고, 음식을 내왔으니 헛걸음은 아니로다.
새로 사람을 사귄 흐뭇한 마음, 말을 나누고 읊조리다 마침내 시까지 짓는다.
그 옛날 은혜 베푼 빨래터 아낙네처럼 그대가 고맙긴 해도, 내 한신(韓信)의 재능이 없으니 부끄럽구려.
어떻게 감사드릴지 마음속에 간직하고,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아드리리다.
(飢來驅我去, 不知竟何之. 行行至斯里, 叩門拙言辭. 主人解余意, 遺贈豈虛來. 談諧終日夕, 觴至輒傾杯. 情欣新知歡, 言詠遂賦詩. 感子漂母惠, 愧我非韓才. 銜戢知何謝, 冥報以相貽.)―‘양식 구걸(걸식·乞食)’ 도잠(陶潛·365∼427)
흔연히 벼슬을 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도연명. 손수 농사도 짓고 이웃 농부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등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듯했다. 한데 어쩌다 지금은 양식 구걸에까지 나선 것일까. ‘궁핍 속에서 절개만을 굳게 지키며/추위와 주림은 싫도록 겪은’(‘음주’ 제16수) 그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은자의 존엄과 고결함을 허무는 이 빈궁한 처지를 시로 옮기는 심사가 오죽 곤혹스러웠으랴. 상대에게 보은할 길이 없음을 자인해야 했기에 시인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측근 한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한신이 굶주릴 때 빨래터 아낙네가 수일간 식사를 제공했고 후일 한신이 그 은혜를 후하게 보답했다는 이야기다.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겠다’는 다짐은 막다른 지경에 이른 시인의 유일한 해결책이자 자기 위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연명의 충실한 계승자 왕유마저도 이 시에 대해서는 ‘세상 물정을 외면한 채 큰 것을 망각하고 작은 것을 고수한’ 탓이라며 못마땅해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