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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세대별로 다른 감상법[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입력 | 2023-02-2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입춘이 지난 2월 9일, 나는 오랜만에 쇼난(湘南) 해변에서 에노시마(江の島), 그리고 가미쿠라(鎌倉) 지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걸었다.

이 지역은 현재 상영 중인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무대가 된 곳이다. 원작 만화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애니메이션 영화로 돌아와서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도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파도가 좋아 한겨울에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로,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이 바다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살았기 때문에, 이 해변을 수없이 걷고 또 자전거로 달렸다. 주말에는 에노시마나 가마쿠라까지 가기도 해 추억이 가득하다.

TV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바다가 보이는 전차 건널목에 가봤다. 에노시마덴테쓰(江ノ島電鉄)의 가마쿠라고고마에(鎌倉高校前) 역에 내리면, 역 바로 옆에 그 건널목이 있다. 이곳에는 일본인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고, 전차가 오기를 기다려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작품의 인기를 실감했다. 초록색 또는 짙은 파란색의 전차가 바다 사이에 보일 때마다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작 만화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92년부터 연재됐다.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어서 등장인물이 한국식의 친숙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桜木花道)는 강백호, 루카와 가에데(流川楓)는 서태웅, 이번 영화에서 부각된 미야기 료타(宮城リョ―タ)는 송태섭 등. 그들의 현지화된 이름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더빙과 자막 버전으로 번갈아 네 번 관람하고 나니 그제야 한국 이름이 익숙해졌다. 자주 듣다 보니 개성 넘치며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걸맞은 이름들이었다.

주변 지인과 학생들에게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원작 만화를 읽었던 30, 40대 세대는 더빙을 선호하고, 젊은층은 자막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20대에 만화를 봤다는 지인은 자막으로 봤으나 추억을 더 실감하기 위해 더빙으로 다시 보고 싶다 했고, 만화의 광팬인 지인은 바빠서 아직 보지 못했지만 더빙으로 보겠다고 했다. 한편 젊은 학생들은 원어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어했고, 일본에 유학했던 학생은 자막 없이 원어만으로 보고 싶어 일부러 일본에서 봤다고 했다.

둘째, 세대를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한 학생은 이 영화를 부모 세대와 함께 볼 수 있는, ‘세대통합’이 가능한 영화라고 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보면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캐릭터를 공유해서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내가 주말에 동네 극장에서 보았을 때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가족을 많이 봤다. 셋째,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3차원(3D) 작화가 훌륭해서 몰입이 잘됐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슬램덩크’가 한국에 맞게 현지화됐던 1990년대 당시의 만화 세대는 그것을 일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우리’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뿐 아니라 한국의 감성에 맞게 의역된 대사도 한몫했다고 한다. 지인인 장호준 영화감독은 의역된 대사가 있었기에 우리의 감성에 꽂혔고, 국가나 세대를 뛰어넘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현상을 일으켰다는 의견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번 극장 상영 작품에서는 농구 경기 장면과 함께 태섭과 그의 어머니의 성장을 중요하게 담고 있는데, 나는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도 고민을 하면서 바다를 바라봤던 기억이 있어서다.

영화 속 그곳은 태섭이 오키나와를 떠나 이사 온 곳으로 여겨지는 쇼난 지역에 소재한 쓰지도단치(辻堂団地)에서 제일 가까운 바닷가인 듯하다.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장면의 배경 멀리에는 커다란 후지산이 보인다. 그렇게 후지산을 보여줌으로써 등장인물들의 희망찬 내일을 표현했다. 내가 간 날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후지산을 보고픈 마음에 벌써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사실 이 지역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수많은 영화, 드라마, 노래의 무대와 배경이 된 곳이다. 일본, 특히 도쿄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한번쯤 가보시길 권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