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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도에서 ‘인공태양’ 활활…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청사진 나왔다

입력 | 2023-02-24 03:00:00

차세대 청정 에너지 핵융합 발전



위 사진은 현재 내부 장비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의 모습. 아래 사진은 디지털로 구현한 KSTAR로 내부에서 움직이는 플라스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


‘핵융합 발전’을 위한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3일 제18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개최하고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생산 실증로 기본개념’ 등의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 핵융합 발전은 가벼운 원자핵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하나의 무거운 원자핵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활용한다. 두 개의 원자핵이 융합할 때 튀어나오는 중성자가 갖고 있는 에너지다. 바닷물 등을 활용할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기 때문에 ‘차세대 청정 에너지’로 꼽힌다.

정부 로드맵은 한국을 포함한 7개국이 연합해 구축 중인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와 보폭을 같이하고 있다. ITER가 2035년 1차 목표인 ‘에너지 증폭률 10’(투입 에너지에 비해 10배의 에너지를 얻는 것)을 달성한다는 전제하에 500MW(메가와트)급 이상의 실증로 건설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실증로는 2035년까지 공학설계를 마치고 ITER의 기술력을 흡수한 뒤 건설에 착수할 것”이라며 “2040년대 말에는 완공 및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증로 구축을 위해서는 안정적 핵융합을 위한 다양한 기반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핵융합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2007년 핵융합 실험로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를 건설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22일 KSTAR를 기자단에 공개했다. 평상시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동에 들어서자 직경 8.8m, 높이 8.6m에 이르는 거대한 주 장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주 장치 내부엔 가운데 큰 자석을 고리형의 진공용기가 도넛 모양(토카막)으로 둘러싸고 있다. KSTAR는 핵융합을 위해 필수적인 ‘플라스마’의 구동을 실험하는데, 실험이 시작되면 이 진공용기 안에서 플라스마가 움직이게 된다.

현재는 업그레이드 등을 위해 실험이 중지된 상태다. 실험 중일 때 이 장치는 ‘1억 도의 뜨거움’과 ‘영하 286도의 차가움’이 1∼2m 사이에서 공존하게 된다. 핵융합을 위해서는 원자핵들이 서로 밀어내려는 힘을 이겨내기 위해 매우 뜨겁게 가열해야 한다. 이를 위해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에 매우 불안정한 물질인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가둬놓기’ 하려면 영하 286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동되는 초전도 자석의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하다.

연구진의 큰 목표는 초전도 자석을 비롯한 각종 장치를 활용해 이 1억 도 이상의 플라스마를 장시간 운전하는 것이다. 실제 전력을 생산하는 실증로로 구축을 위해선 24시간 내내 고온 플라스마 운전이 가능해야 한다. KSTAR는 2018년 1억 도 초고온 플라스마 운전을 최초로 달성한 이후 2020년 20초, 2021년 30초 달성으로 세계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24시간 구동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KSTAR는 새 단장 중이다. 내부 구조물인 디버터를 탄소에서 능동냉각이 가능한 텅스텐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플라스마로 인한 내벽 온도의 상승을 억제하고 장시간 운전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텅스텐 교체 시 100배 이상의 효율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치 업그레이드 후 8월 중 운영을 재개할 KSTAR는 올해 ‘50초’의 목표를 설정했다. 이어 내부 안정성 연구와 플라스마 가열 및 전류 구동을 위한 고성능 장치 도입 등을 거쳐 2026년까지 ‘1억 도 300초 운전’을 검증할 예정이다.

이날 공개된 ‘버추얼 KSTAR 시스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실험로 내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거나 가상실험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운전상태를 디지털 공간에 띄워놓고 문제 발생 시 색깔 변화 등을 통해 이를 알리는 방식이다. 이뿐만 아니라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가상 실험을 진행할 수도 있다.

300초가 검증된다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개척은 대략 마무리된다는 게 연구진 측 설명이다. 윤시우 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300초에서 24시간까지 운전시간을 늘리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이는 연구개발의 영역보다는 예산과 인력의 문제”라며 “우선 물리적으로 300초라는 고비를 넘어야만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