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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상징의 미학으로 팬데믹 극복 노력… 아름답고 처절”

입력 | 2023-02-24 03:00:00

제20회 ‘영랑시문학상’ 본심 후보작 5편 선정
등단 20년 넘은 중견시인 대상, 김선태-김제현-박판식 등 본심에
내달 17일 최종 수상작 선정… 강진 영랑 생가서 4월 시상식



제20회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가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17일 진행됐다. 왼쪽부터 심사위원 이근화 이지엽 배한봉 시인. 이들은 “햇발 같은 숨결, 샘물 같은 리듬을 보여주는 중견 시인의 작품집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0회 영랑시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7일 심사를 진행해 5개 작품을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그의 시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현한 시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달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 시인)는 올해 운영 요강과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 기준을 확정하고 예·본심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예심 위원인 이지엽 배한봉 이근화 시인은 ‘등단한 지 20년 이상 된 시인이 2021, 2022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기존 수상작 제외)으로 올해 1월부터 15개 작품을 선정했다. 이 중 심사를 거쳐 5개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선태 시인의 ‘짧다’ △김제현 시인의 ‘시간’ △박판식 시인의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임선기 시인의 ‘피아노로 가는 눈밭’ △최영철 시인의 ‘멸종 미안족’이다(이상 작가명 가나다순).

김선태 시인의 ‘짧다’는 서정시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언어의 압축미를 잘 구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간결한 진술이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고 평가했다.

김제현 시인의 ‘시간’은 언어의 아름다움과 운율의 미학을 웅숭깊게 보여주는 시조시집이다. “세계와 사회, 인생의 형이상학적인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물 흐르듯이 펼치는 사색과 통찰의 깊이가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인의 ‘나는 내 인생에…’는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심사위원들은 “엄살 피우거나 과장하지 않고 감상을 늘어놓지도 않는다”며 “단단한 힘이 맺히는 것은 일상의 구체적 생생함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임 시인의 ‘피아노로 가는 눈밭’은 상투성을 배제한 간결한 언어를 사용했다. “간소한 아름다움 속에 낯선 울림과 매혹적인 호흡이 전해진다. 오랜 시간 언어를 매만지며 고심한 끝에 건져 올린 미감이 드러나 있다”고 평했다.

최 시인의 ‘멸종 미안족’은 서민의 삶을 서정적으로 담았다. “지치고 허기진 존재들이 둘러앉아 더운밥을 나누며 험한 세상 살아내느라 그동안 애썼다고 서로 등을 다독이며 오순도순 얘기를 건네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햇발 같은 숨결, 샘물 같은 리듬을 보여주는 중견시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며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시기에도 어려운 현실을 은유와 상징의 미학으로 극복해 낸 시인들의 노력이 처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본심은 다음 달 17일 열린다. 시상식은 4월 14일 전남 강진군 영랑 생가에서 개최된다. 상금은 3000만 원.





“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같은 시 오래도록 남길것”



강진원 강진군수 축하 메시지

“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같은 시를 오랫동안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진원 전남 강진군수(64·사진)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군수는 “시인은 시로 기억되지만, 시인이 품었던 시대정신은 시인의 이름이 걸린 문학상을 통해 더 큰 힘을 받고 후대로 면면히 계승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영랑시문학상을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강 군수는 올해 20회를 맞는 영랑시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랑 김윤식은 일제강점기 주권을 되찾으려 뜨겁게 항거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자 한글이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 한국 근대시의 보배”라며 “영랑을 기리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근대시를 함께 기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는 인류의 노래이고 텍스트의 정수이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미래와 아름다운 비전을 눈에 보이는 감각적 언어로 담아낸다”며 “아름다운 시 한 줄의 힘은 어떤 산문의 논리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강 군수는 “영랑시문학상이 아름답고 음악적인 시어와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성을 느낄 수 있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면면히 계승하는 축제이자 즐거운 이벤트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