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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은 뱀 같은 가스라이팅을 멈추라

입력 | 2023-02-24 11:00:00


2022년 미국 미리엄 웹스터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가 가스라이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선거사기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식으로 정치, 미디어에서 주로 쓰이면서 검색량이 전년도에 비해 17배나 폭증해서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1938년 초연된 연극 ‘가스등’(1944년 영화로도 나왔다)에서 나왔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본래 의미는 ‘오랜 심리적 조작으로 피해자의 판단력을 잃게 함으로써 가해자한테 의존하게 만드는 행위’지만 요즘 미국 정치판에선 사적 이익을 위한 거짓말, 대(對)국민 사기를 심플하게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쏟아낸 가짜뉴스를 모아 ‘가스라이팅 아메리카’라는 책까지 나왔겠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가짜 주장을 모아 정리한 책 ‘가스라이팅 아메리카’ 표지.


● 트럼프와 이재명은 닮은 꼴 희생양?
“법치를 빙자한, 법치의 탈을 쓴 사법사냥이 일상이 돼 가고 있는 폭력의 시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윤석열 정부를 비난했다. 사법사냥의 희생물은 즉 이재명 자신이라는 소리다.

그는 “대선에서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로 인해 제 개인이 치러야 할 수모와 수난은 제 몫”이라고 했다. 2022년 대선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정적이 돼서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비리 연루 혐의와 관련해 2023년 2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2차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트럼프도 그런 소리를 했다. 작년 미국 중간선거 때도 공화당 후보 지지 연설에서 “나는 두 번 대선에 출마해서 모두 다 이겼다”며 “2020년에는 2016년보다 수백만 표를 더 얻었다”고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 그 선동적 발언에 자극받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에 난입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한 사건이 1·6 미 의회 폭동사태다. 작년 11월 미 법무부가 이를 조사할 특검을 임명하자 트럼프는 “매우 불공정하고 정치적 수사”라며 자신이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꼭 이재명처럼.
● 민주당 제보자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  
하지만 이재명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재명의 범죄(혐의)를 잡아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재명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정적 제거를 위해, 권력 강화를 위해 남용한다”며 윤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그의 죄를 처음 폭로한 쪽은 이재명과 같은 민주당 안에 있었다.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다.

2021년 8월 말 대장동 비리 의혹을 첫 보도한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기자는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8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핵심 관계자가 제보를 해줬기에 사실 확인을 거쳐 기사를 썼다”는 글을 올렸다(이재명 성남시장의 전횡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대장동 원주민들이 이낙연 선거 캠프에 문건을 들고 와 읍소하더라고 최근 중앙일보에도 소개됐다).

박종명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대장동 몸통’까지 페이스북에 적어놨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정된 후 ‘대장동 몸통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라고 국민에게 호도한다…분명히 밝히지만 대장동 특혜 의혹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같은 당 핵심 후보 측에서 ‘이재명 후보가 몸통’이라고 제보한 것”이라고.
● “의원선거 떨어지면 생명 끝장, 끽”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이재명의 죄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그는 오종종하게 대선 패배 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나섰던가. 5월 23일 지역구 유세 중 이재명이 제 손으로 제 목 치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번에 이재명 지면 정치생명 끝장난다. 진짜요. 끽” 했던 영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의원 불체포특권 없이는 성남시장 시절 자행한 범죄(혐의)에 대해 보호받지 못하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터다.

2022년 5월 23일 국회의원보궐선거 유세 중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행동을 하는 이재명 당시 인천계양을 후보.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그러면서도 바로 전날인 5월 22일 그는 충북 청주 지원 유세에서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당시 국민의힘에선 의원 불체포특권이 ‘범죄특권’으로 악용되지 않게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지금껏 통과되지 않았다). 금배지를 달고나서도 불안한지 이재명은 2022년 8월 굳이 당 대표로 나섰다. 그리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불체포특권 포기도)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행각을 벌인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요설을 펼쳤다. 23일엔 불체포특권 포기도, 대표직 사퇴도 생각 없다고 딴소리를 했다. 하긴 이재명의 말 뒤집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 가스라이팅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또 뭔가
더욱 놀라운 건 이재명의 가스라이팅,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토하는 데 똑똑한 의원들도, 극성맞은 개딸들도 잘도 넘어간다는 것이다. 대선 때 이재명은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혔던 적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하게 여겨야 할 신뢰 자본은 약에 쓰려고 해도 못찾을 정치인이 이재명일성 싶다. 그가 27일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비명계 의원들까지 면담하며 “공천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은근한듯 표 단속을 했단다. 음하하, 아직도 이재명의 약속을 믿는 의원들이 계셨다는 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3년 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소속 의원들과 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규탄대회에는 소속 의원과 당원 30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고 민주당은 밝혔다. 앞줄 왼쪽부터 서영교 정청래 의원, 이 대표, 박홍근 원내대표, 고민정 박찬대 의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의원들이야 공천이 포도청이어서 이재명한테 목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임을 자부하는 개딸을 비롯해 민주당 지지층은 대체 왜 이재명한테 빠진 건지 나는 궁금했다. ‘정치지식 무지, 오인;오답의 특성을 중심으로’라는 유재성 계명대 교수의 2021년 논문에서 단초를 발견했다. 대통령 임기 같은 정치지식에 관해 틀린 답을 한 사람들(오답자)은 특이한 속성을 지녔다는 거다. ‘모른다’고 답한 사람들이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다른 성향이었다.
● 민주당이 이재명 개인정당이냐
자신 있게 틀린 답을 말한 오답자들은 정답을 답한 사람들(정답자)처럼 정치에 관심도 많고 투표 참여율도 높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치적 태도와 행태에서 오답자들은 민주당을 선호했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깊은 침묵…).

그 오답자들이 지금도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추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래서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정확한 정보를 잘 갖춘 시민(교육/정신)이 중요하다고 학교 다닐 때 마르고 닳도록 배웠다. 그래서 이재명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다면, 23일 국민 앞에 쏟아냈던 궤변을 판사 앞에서 당당히 반복함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을 받아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재판에서도 무죄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럴 자신 없다면, 제발 그 세치 혓바닥 대(對)국민 가스라이팅을 멈추시라. 설령 성남시장 때 시정농단을 하지 않았다 해도,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私黨)이 아니다. 의원들 시간과 에너지를 당 대표 멋대로 징발해 개인 방어에 쓴다는 건 혈세 도둑질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