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삼성이 ‘찜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 오준호 KAIST 석좌교수 어렸을때부터 물리, 우주 등에 관심… 국내 첫 인간형 2족 로봇 ‘휴보’개발 회사 옥상엔 천체관측시스템 구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에도 취임 교육학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율성… 아들 에릭 오 감독에게 그대로 전해
《로봇 휴보 아빠의 ‘덕업일치’
‘삼성전자가 찜한 로봇 기업’으로 화제에 오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는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석좌교수다. 옥상에 세 대의 천체 망원경을 설치한 사옥에서 로봇 개발과 천문 관측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오 교수를 만났다.》
10일 오전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에서 국내 최초 인간형 로봇인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KAIST교수. 대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소년의 부모는 1960년대에 ‘우리의 태양(Our Sun)’이라는 책을 그에게 선물했다. 소년은 까만색 표지에 주황색 태양이 있던 그 책을 통해 화성에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두 개의 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였을까. 밤하늘에서 행성을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종이 위에 별자리를 그려보고, 렌즈를 마분지로 감아 천체 망원경도 만들었다.
기계, 물리, 우주 발사체…. 60년 넘게 뻗어온 그의 호기심은 그만의 ‘인생 별자리’를 이룬 것 같다. “로봇을 목표로 한 적은 없어요. 로봇은 다양한 재미를 찾는 과정 중의 하나였거든요.” 국내 최초 인간형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만든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69) 얘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봇 공학자인 그에게 최근 뉴스가 더해졌다. 그가 창업한 로봇 회사에 삼성전자가 590억 원을 투자한 것이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에도 오른 그의 삶이 궁금해져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 삼성전자가 처음 투자한 로봇 기업
10일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에서 이 회사 창업자 오준호 KAIST 석좌교수가 ‘DRC휴보’ 로봇(오른쪽)과 유압 로봇 옆에 서서 웃고 있다. 대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로봇부터 보기로 했다. 2004년 최초의 휴보에서 몇 차례 진화한 DRC휴보(2013년)가 서 있었다.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봇챌린지에서 우승하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를 봉송해 친숙한 로봇이다. 그런데 그 옆에 처음 보는 로봇이 있었다.
―이 로봇은 두 다리만 있다.
“저희가 5년째 연구개발 중인, 100% 유압으로 작동하는 2족 보행 로봇이다. 힘센 다리를 주력해 개발하느라 아직 얼굴과 팔은 달지 않았다.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 밸브, 펌프, 제어부 등 핵심 부품을 100%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2000년 일본 혼다가 전기모터 방식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내놓자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내놓았던 게 휴보다. 이제는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2족 로봇 ‘아틀라스’같은 유압 방식의 로봇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의 다리 관절에 유압 모터를 장착하면 가벼우면서도 강한 힘과 속도를 낼 수 있다.”
―인간형 로봇은 곧 상용화하나.
“로봇은 인간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다. 사람처럼 생겼으니 사람처럼 움직일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자율주행처럼 갈 길이 멀다.”
―인공지능(AI)을 장착시키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지는 않나.
“커피 한잔하자”는 그의 안내를 받고 따라간 곳은 레인보우로보틱스 1층에 있는 가로 1.7m, 세로 1.5m, 높이 1.95m 크기의 부스 앞이었다. 로봇 팔이 에스프레소를 내린 뒤 우유를 얹어 카페라테를 1분 내로 뚝딱 만들어냈다.
―이 협동로봇이 주력 제품인가.
“그렇다. 지난해 회사 매출이 140억 원 정도 됐는데 2년 전 시작한 협동로봇이 매출의 80∼90%였다. 협동로봇은 사람과 작업공간을 나눠 쓸 수 있어 ‘새로운 시장’이 있다고 본다. 올해 생산량을 800대로 늘리고 첫 수출도 하겠다.”
―참, 휴보 이름은 무슨 뜻인가.
“그냥 ‘휴보’ 발음이 예뻐서 지었다. 매사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
● “부모의 가르침대로 자녀에게도 자율성 줬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오 교수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5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대 초반 ‘휴보’를 만든 것은 일본이 ‘아시모’를 내놓는 것을 보고 ‘저게 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해 봐야지’라는 생각에서였다.―호기심이 많았나 보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바퀴 체인과 할머니 재봉틀이 신기했다. 백과사전을 넘겨 보면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할 수 없었다.”
―부모는 어떤 분들이었나.
“고등학교 때 반 72명 중 68등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집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항상 글을 쓰셨다. 우리가 어떻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지가 일상의 대화였다. 가족예배를 드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먼저 기도했다. 우리가 어디에 땅을 살까 이런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 교수의 아버지는 고 오기형 연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11·12대 국회의원과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를 지낸 고 김현자 의원이다. 이들의 교육 철학이 궁금해 옛 신문 보도를 찾아보았다. 고 오기형 명예교수는 1976년 한 기고문을 통해 “인간의 교육은 졸업하면 끝나기 쉬운데 젊은 시절에 평생 동안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의지력, 기본적인 태도,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고 썼다. 고 김 의원은 56세이던 1984년 한 기고문에서 “요즘은 시간 나는 대로 서예를 배우는데 나이에 구애되지 않고 항상 뭔가를 배운다는 것 또한 인생의 즐거움입니다”라고 썼다.
―나이 든 후에도 계속 배우셨나 보다.
“어머니는 서예뿐 아니라 90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셨다. 미국에서 유학해 영어를 잘하신 부모님은 컴퓨터도 일찍 배워 영어로 e메일을 많이 썼다.”
오준호 교수와 아들 에릭 오 감독(왼쪽). 오준호 교수 제공·대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부모로부터 배운 대로 자녀들을 대했나.
“만화를 좋아하는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응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스스로 준비하더니 서울대 미대에 가더라.”
―원래 창업의 원대한 꿈이 있었나.
“아니다. 2011년 휴보를 구입하겠다는 외국 연구기관의 주문이 8건이나 들어와 시작하게 됐다. 한 대에 5억 원이었으니 40억 원을 쥐고 시작한 교원 창업이었다. 당시 창업에 관심을 보인 대학원 제자(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와 1년간 공동대표를 지낸 뒤 지금까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교수 리더십’이겠다.
“창업 때부터 현금이 두둑한 ‘꽃길’을 걸어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 삼성이 투자하면서 10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 경영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직원 70명인 지금도 영업과 홍보를 일절 하지 않는다. 저는 재무나 인사는 관여하지 않고 사업의 본질인 기술 얘기만 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곧 미국에 첫 해외 지사를 세울 계획이다. 현지 인력을 뽑는 화상 인터뷰를 마친 이 대표, 오 교수와 이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고구마튀김과 찐만두가 나오는 ‘소박한 집밥’ 같은 식단이었다. 이 대표가 직접 작명했다는 레인보우로보틱스 회사명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많은 회사들이 ‘∼테크’ 같은 회사명을 썼다. 뭐 하는 회사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싶어 ㈜레인보우로 처음에 지었다.”(이 대표)
“미국 친구들이 동성애 사업을 하는 회사냐고 묻기에 ㈜레인보우로보틱스로 바꿨다. 이제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애플’이 왜 사과냐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듯이.”(오 교수)
● ‘덕질’이 일의 보람으로 연결되는 기쁨
레인보우로보틱스 사옥 옥상에 있는 천문대에서 망원경을 보는 오준호 교수. 오준호 교수 제공·대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로봇과 망원경은 어떤 관계인가.
“망원경은 두 개의 모터가 달린 로봇이다. 망원경의 감속기와 구동기 등 핵심 기술이 로봇에 쓰인다. 로봇 기술로 만든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천문 마운트(추적 장치) 시스템은 천문 선진국들에 수출된다. 특히 하모닉 감속기가 적용된 고정밀 마운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 교수는 소문난 천문 관측 전문가다. 그가 2017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촬영한 개기일식(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 영상은 한국인 천체사진 작가 중에서는 두 번째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선정한 ‘오늘의 사진(APOD)’으로 선정됐다. 2021년 10월에는 전남 여수시 백야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1, 2단과 페어링 덮개가 분리되는 장면을 단독 촬영해 공개했다.
―최근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이 됐다.
“평생 천문을 관측하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은 웬만큼 다 해본 것 같다. KAIST 연구실 건물 옥상에도 작은 개인 천문대를 만들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별을 설명해주는 ‘스타(별) 파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경통을 깎아 나만의 망원경을 만들고 싶다. 이번에 회장을 맡은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천문 저변을 넓히기 위해 봉사하는 단체다. 다음 달에는 ‘메시에 마라톤’을 연다.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110개 성단(星團)에 이름 붙인 ‘메시에 목록’을 하룻밤 동안 육안으로 찾는 행사다. 밤하늘의 별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봤으면 한다.”
―미래세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포기(실패)가 무서워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가게 될 때가 많다. 휴보를 만들 때도 그랬다. 그러려면 포기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면 그 일이 왔을 때 ‘내 일’이란 느낌이 온다. 삶은 그 느낌을 키우는 여정이다. 과정의 경험이 값지다면 실패해도 실패가 아니다.”
―요즘 좋아하는 일은.
충남 공주시 공주비행장에서 경량 항공기 앞에 선 오준호 교수. 오준호 교수 제공·대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휴보 아빠’의 덕업일치 삶을 들으면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떠올랐다. 대개는 상상만 하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뤄낸다. 그와 인터뷰하면서 “정말 힙하시네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한 것 같다. 그런데 그의 ‘덕질’은 충동적인 게 아니었다. 경량 항공기 조종도 “어느 날 문득”이라고 했지만 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 꿈이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야기였다.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