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하는 뇌/다이애나 도이치 지음·박정미 박종화 옮김/404쪽·2만2000원·에이도스
아쉽다. 이 책이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때 논란이 된 “○○○○ 쪽팔려서 어떡하나” 발언 직후 나왔다면 단박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텐데. 명확하게 들리지 않은 부분이 어떤 말이냐를 놓고 정쟁이 일어난 건 물론이고 온 국민이 청력까지 시험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청각적 착각인 ‘착청’ 현상을 발견한 음악심리학의 대가. 책은 다양한 착청 현상 연구를 통해 인간의 소리 지각 메커니즘과 뇌의 미스터리를 해부한다.
저자에 따르면 2008년 미국에서는 ‘말하는 팅키 윙키(Tinky Winky)’ 인형 때문에 소비자들이 소송을 하겠다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손을 잡아당기면 말을 하는 이 인형이 ‘I got a gun, I got a gun, run away, run away(나는 총을 갖고 있어, 나는 총을 갖고 있어, 도망가, 도망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조사에 따르면 인형이 말한 것은 ‘Again, Again’이었다. 저자는 지식, 신념, 예측이 만들어낸 언어의 착청을 ‘유령어’라고 부른다.
저자는 같은 소리라도 평소의 신념이나 정서,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등에 따라 사람들이 전혀 다르게 듣는다고 말한다. 우리 뇌가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심지어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조차 들린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각자 믿는 진실은 다를 수 있으니 절대 오만해지지 말라는 경고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꼭 봐야 할 사람 중 하나는 한쪽의 말만 듣는 정치인들이 아닐까. ‘○○○○’ 논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