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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치매 노부모 돌봄요령 몰라 발동동… “복지용구-요양정보 미리 준비를”[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3-02-25 03:00:00

시니어 용품매장 ‘그레이몰’ 연 이준호-박진호 씨
건강 악화된 80대 부모 돌봄 공감… 50대 선후배가 의기투합해 창업
휠체어 등 복지용구 쇼핑몰 개설… 건보공단 장기요양보험과도 연동
지원 품목-구매 한도 등 알려줘



노인용 보행기를 점검 중인 이준호 대표(왼쪽)와 박진호 이사. 30대 초에 잠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은 50대에 함께 창업하며 제2의 인생 첫발을 내디뎠다. 부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50대쯤 되면 지인들 모임에서 부모님 건강이 화제가 되는 일이 많다. 세월에 떠밀려 고령이 된 부모 세대가 어느 틈에 보살핌의 대상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부모님은 요즘 어떠셔? 우리 아버지는 이번에….”

왕년의 직장 선후배였던 이준호 그레이스케일 대표(53)와 박진호 이사(51)가 5년 만에 만나 의기투합한 계기도 이런 대화였다. 2021년 봄쯤 우연히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눈 게 창업으로 이어졌다. 회사 설립 취지는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과 돌보는 자녀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 지난해 3월 경기 부천시에 복지용구 매장 ‘그레이몰’을 열고 4월 온라인 사이트도 오픈했다. 16일 매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갑자기 닥쳐온 부모님 돌봄
발단은 3년 전, 박 이사의 아버지(84)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일이다. 골든타임 내에 조치를 했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아버지는 다리 한쪽을 끄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였고 말도 어눌해졌다. 얼마 뒤 심장 스텐트 시술도 받았다. 불행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던가. 비슷한 시기 어머니(83)가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보행이 불안정해 집안에서도 자꾸 넘어지고 다쳤다.

기러기아빠로 혼자 지내던 박 이사는 결국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두 분만으로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계신 집은 지뢰밭같아요. 전깃줄 하나, 양탄자 끝자락에 걸려 넘어져도 큰 부상으로 이어집니다.”

달라진 삶에서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았지만,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고 물건들도 시원찮았다. 예컨대 지팡이. 까다로울 정도로 멋쟁이였던 아버지는 지팡이가 필요했지만 시판되는 지팡이를 마뜩지 않아 했다. 그렇게 일반 지팡이를 알아보다가 복지용구 지팡이를 알게 됐고, 복지용구 전반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로 확장돼 갔다. 제도를 알고 시장을 알수록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세상이었다.

그 무렵 직장 선배였던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삼성물산, 현대홈쇼핑, 오케이몰 등에서 일해온 유통과 이커머스 전문가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3년가량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이 대표도 마침 인생 2막을 고민하던 차였다. “몇 년 전 가까운 선배가 나이 50에 회사에서 쓰러져 불귀의 객이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이 대표)

두 사람은 또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과 너무도 준비가 안 된 현실을 공유했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편찮아지시고, 많은 게 필요해질 텐데 자녀들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가면서부터 더듬고 헤매는 간병생활이 시작되겠구나….”(박 이사)

다음 날부터 이 대표는 ‘숫자 검토’에 들어갔다. 노인인구와 제품들의 시장 규모, 관련 제도를 조사했다. “이거 할 만하겠다. 구체화해 보자.” 두 사람이 만난 지 반년 만인 2021년 9월에 그레이스케일 법인을 설립했다.


●“부모는 나이가 들고, 자녀는 철이 들고…”
부천의 한 오피스텔상가 2층에 자리한 매장은 총 140평 규모. 15평의 판매 공간에는 휠체어와 전동 침대부터 성인용 기저귀까지 복지용구들이 전시돼 있고 넓은 창고 한편에는 물품 촬영을 할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상품 가격표에는 정가와 할인가 두 가지가 적혀 있다. 예컨대 60만 원짜리 독일제 보행기의 할인가는 9만 원이다. 장기요양보험 복지용구 지원을 활용하면 본인부담 15%로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18개 품목 400여 종을 구매할 수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 장기요양 등급이 있어도 복지용구 지원이 되는지 모르는 사람, 자신이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용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모르면 눈앞이 깜깜하고 돈도 많이 쓰게 됩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많이 하시게 되지요.”

이 대표는 시니어용품은 자녀들이 사고 부모가 쓰게 되는 특성상 더욱 정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은 어차피 치매나 거동 불편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갈 수 없는 상태예요. 자녀들이 대신 사줘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충분히 정보를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초 이커머스 위주의 복지용구몰을 구상했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을 받으려면 지자체로부터 ‘복지용구사업소’ 승인을 받아야 했고, 이를 위해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복지용구사업소는 전국에 1977곳(지난해 말 기준). 대도시에 쏠려 있고 대부분 영세하다.


●장기요양보험 이용이력과 회원이력 연동시켜

그레이몰 매장을 밖에서 보면 이 같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이들은 비록 50대 창업이지만 스타트업으로 인정받아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그레이몰 홈페이지와 건강보험공단 사이트를 연동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한 덕이다.

공단에서 복지용구를 사려면 1인당 연간 한도 160만 원, 상태에 따라 구매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나뉜다. 보행기는 5년에 2개, 안전손잡이는 1년에 10개 등 품목마다 한도가 제각각이다. 문제는 이런 규정이 너무 복잡해 일반인은 자신이 뭘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알려면 복지용구 사업소에 가서 공단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의 복지용구 구매 이력 5년 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들은 이걸 회사 사이트와 연동시켜 장기요양인증번호와 이름을 넣고 회원 가입을 하면 장기요양보험 사용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회원 가입 뒤 마이페이지로 로그인하면 18개 품목이 다 나오고 ‘구매 가능’ ‘구매 불가능’ ‘언제 샀으니까 언제 다시 살 수 있다’는 안내가 품목마다 나온다. 연간 한도 160만 원 중에 얼마를 썼으니 얼마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안내된다.

프로그램이 완성된 12월 이후 회원은 960여 명. 장기요양등급자가 100만여 명인 것에 비하면 극소수다. 지난해 5억 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안에는 수지균형을 이루는 달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너도나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으면 어렵다는 건보 재정에 더 부담을 주지 않을까.

“제도를 적극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거라면 난센스입니다. 장기요양보험 연간 11조 원 중 복지용구는 3000억 원 정도 들어갑니다. 복지용구의 예방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침대 옆 안전바 설치에 만 원 돈이 들지만 설치하지 않아 낙상사고를 당하면 치료비로 수백만 원이 들지요. 어느 쪽이 경제적일까요.”

특히 낙상으로 인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이 크다. 고관절 골절을 방치하면 2년 이내 사망률이 70%이고, 수술해도 2년 이내 30%가 사망한다.

“다들 다치신 다음에 뭘 하려 하잖아요. 사실 그 전에 적은 돈으로 안전을 추구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보험재정이 문제라면 본인부담비율을 좀 더 늘려도 좋지 않을까요. 일본의 경우 10∼30%인 것으로 압니다.”

일찌감치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일본의 경우 의료정책을 고령자가 돌봄이 필요없는 상태, 즉 스스로 생활하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돌봄 예방’으로 중점을 옮긴 지 오래다.

인생 2막을 연 두 사람의 꿈은 크다. 일단 알려지는 게 급선무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공단 지정이 아니더라도 추천할 만한 상품들도 함께 취급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일부 상품은 직접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NH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연 오픈 비즈니스데이 행사에서 우수 테마상을 받았는데, NH의 전국망을 활용한 지방 노인 단독가구의 집을 안전하게 바꾸는 낙상 방지 비즈니스를 제안하려는 계획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니어를 위한 상품과 정보 서비스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희는 이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젊고 유통을 잘 아는 편입니다. 시니어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지금 부모님 때문에 회원이 되신 분들이 앞으로 10여 년 뒤면 본인이 고령자가 됩니다. 일종의 미래세대에 대한 ‘유스 마케팅’ 개념도 있는 셈이죠.”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