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일-EU에 밀착하며 최우선 동맹 인증 한미 외교·산업 2+2 협의체 추진해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는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우리는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서 정말 놀라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미일 경제정책협의위원회(EPCC)에 한국을 초청하자는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인도태평양 보고서에서 내놓은 제안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셔먼 부장관은 “우리는 항상 새로운 형식과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올 새로운 방법에 열려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지금 보고 있는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가) 바로 그 보고서가 요구하는 것”이라며 “더 강력한 3국 관계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개방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외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보면 아직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7월 출범한 EPCC는 미국과 일본 외교·산업 장관급 2+2 협의체로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에 대한 공급망 구축부터 첨단 반도체 개발과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우주, 원자력 차세대 기술 협력 등을 의제로 다루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경제안보 이슈들이 총망라된 ‘원스톱’ 협의체인 셈이다. 대만과 한국에 빼앗긴 반도체 제조 패권을 되찾겠다고 나선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과 2nm(나노미터·1nm는 1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반도체를 공동 생산하기로 한 것도, 일본 우주인을 달 탐사에 나설 미국 우주선 아르테미스호에 태우기로 한 것도 모두 EPCC를 통해 합의됐다.
반면 미국이 외교·산업 장관급 2+2 협의체를 정기적으로 갖는 국가는 일본 외에는 유럽연합(EU), 멕시코 정도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9월부터 EU, 멕시코와 각각 외교·산업 장관은 물론 통상 장관이 참여하는 3+3 협의체인 무역기술위원회(TTC)와 미-멕시코 고위급 경제대화를 열고 있다. 이쯤 되면 외교·산업 장관급 2+2 회의는 각 대륙에서 선별한 미국의 최우선 동맹 인증이나 다름없다.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를 강조하는 윤석열 행정부도 출범 전부터 미국에 한미 외교·산업 장관급 2+2 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아직 그동안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과 숱한 외교장관 회동에도 긍정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글로벌 통상질서 새판 짜기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에 이어 해외투자심사 강화, 바이오 산업 생산 확대 전략 등이 줄줄이 발표된다. 중국의 러시아 무기 지원 정보를 공개하고 나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미국의 서슬 퍼런 미국 우선주의의 바람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짜고 있는 새 경제질서에 참여해 한국의 새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것은 더 큰 과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추진되고 있는 정상회담에서 한미 외교·산업 장관급 2+2 회의가 결실을 맺길 기대해본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