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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줌인/임현석]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스마트폰

입력 | 2023-02-27 03:00:00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준영(임시완)이 해킹한 나미(천우희)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영화사 미지 제공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해 비행 청소년이 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1990년대 초중반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있던 건전 영상 캠페인 내레이션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어찌나 오싹하던지. 비행 청소년은 우리 건전한 공동체를 수시로 위협하는 탓에 결국엔 눈 흘김을 받는 존재. 그렇게 된다는 건 가족과 친구들이 외면하고, 교사가 어느 날 나를 포기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듯 공포감은 관계가 무너지고 내가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되는 상황에서도 찾아 온다. 그건 호환, 마마만큼이나 무서운 일이라는 것. 넷플릭스로 공개된 범죄 스릴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도 이와 같은 공포를 다룬다.

영화는 평범한 회사원 이나미(천우희)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가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모습을 비춘다. 이나미는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돌려받았지만, 어느 날부터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아연해한다. 자신을 아껴주던 회사 사장님을 험담하는 글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라가고, 동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린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선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틀어진다. 이로써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공포의 3종 세트가 다 갖춰진다.

여기서 다시 캠페인 속 내레이션으로 되돌아가 보자. 옛날엔 공포의 대상은 주로 외부에 있는 ‘미지의 존재’였다. 즉, 집 안에 들어와서 아이를 물고 가는 호랑이이자 천연두를 옮긴다고 여겨지던 귀신 같은 것들. 그리고 전쟁처럼 한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사태도 그렇다. 내가 속한 울타리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들이 여기 울타리 안을 넘볼 때 두려움을 느낀다. 즉, 공포의 대상 중 첫 번째는 바로 울타리 밖의 낯선 존재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이나미를 노리는 악의가 그렇다.

더 나아가면 울타리 안의 단단한 결속이 무너지는 것도 겁난다. 악령에 붙들린 가족에게 위협을 받거나, 좀비가 된 친구를 내가 죽여야 할지 말지 딜레마에 빠지는 공포 영화들이 그리는 세상처럼. 이 경우 나를 아득하게 품어주던 옛날의 울타리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며, 기존의 도덕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 공포의 대상 두 번째. 한때 익숙했다가 낯설어지는 존재다. 영화 속 주인공과 틀어지는 관계들이 그렇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조차도 미지의 존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더 이상 나 자신임을 증명할 수 없고 통제되지 않는 나. 자기 파멸적인 나. 공포의 대상 세 번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저지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사태가 그렇다.

영화는 공포의 대상을 한 상에 차려낸다. 영화가 초반부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한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속으로 빠뜨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고, 바라지 않던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고, 누군가가 나를 감시한다. 이로써 나를 지탱해오던 조건들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다.

다만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 서사의 밀도는 떨어진다. 선과 악의 구도를 선명하게 그리고 스릴러의 스토리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공포의 대상이 외부의 낯선 존재로 빠르게 정리된다. 결국 선의로 똘똘 뭉친 우리와 영문을 알 수 없는 적의로 가득 찬 저쪽의 구도가 짜이는데, 이는 결국 호환을 맞닥뜨린 상황처럼 돼 버린다.

공포의 선물세트를 한 아름 받아들 줄 알았는데, 여러 선택지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고, 포장을 까봤더니 나를 흉내 내는 ‘손톱 먹은 쥐새끼’가 나오는 모양새가 된다. 영화는 현대적 설정의 매력을 충분히 풀어내진 못하지만, 공감을 통해 생활 밀착 공포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매력만큼은 남는다. 그것만으로도 오싹한 기분은 든다.

하긴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지각하는 게 공포가 아니면 뭐겠나. 일상이 지뢰밭이고 부디 악의를 만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산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