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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와 궁합 맞는 꽃, 집의 기운도 바뀐다[안영배의 웰빙풍수]

입력 | 2023-02-27 13:00:00

매화는 학문 운, 모란은 부귀 운을 가져와




봄꽃이 핀 전남 구례군의 운조루. 조선시대 전통가옥은 방과 방위에 맞추어 적절한 꽃나무를 심었다. 



옛 사람들은 방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동서남북 네 방위마다 각기 기운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식구들의 방을 배치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했다. 가옥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주로 동쪽 방위의 방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서쪽 방위의 방은 안정과 휴식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또 남쪽 방위의 방은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이들이 주로 사용토록 했고, 북쪽 방위의 방은 고도의 집중력과 연구 작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이런 배치는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태양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현상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진다. 해가 비치는 위치나 방위에 따라 온도나 습도 등의 변화가 생기고, 인체 역시 이런 변화에 맞추어 생리적, 심리적 반응 등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연령이나 상황에 맞는 조건을 갖춘 방위의 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네 방위 중 특히 동쪽 방위의 방을 매우 중요시했다. 동쪽 방위는 해가 맨 먼저 비치는 곳으로 생동감과 생명력이 왕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침 햇빛과 함께 신선한 생명력을 받아들이도록 문이나 창도 가급적 동쪽으로 냈다.

한편 동쪽은 음양오행상 목(木)의 기운에 해당한다. 목은 발육과 성장이라는 기운 이외에도 학문적 성취, 수직적 상승, 창의력 등을 상징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들을 동쪽 방에서 자도록 한 것은 잘 성장하라는 기원 이외에도 공부를 잘 하라는 속내도 담겨 있었다.

조선 양반가는 자손이 학문을 잘 닦아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여겼다. 자손이 과거에 합격해 가문을 빛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로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 핀 홍매화.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 최고의 풍수 액세서리, 매화와 모란 
동쪽 방위의 방에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풍수적 소품도 동원했다. 바로 마당에 심어놓은 식물이다. 동쪽 방에서 아침 일찍 일어난 이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으레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다. 만물이 아직도 추위에 움츠려 있을 때 매화가 맨 먼저 꽃을 피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봄의 생명을 노래하는 꽃이기에 집안에도 새 기운을 전달해준다고 보았다.

게다가 매화는 ‘글을 좋아하는 나무’임을 뜻하는 호문목(好文木)으로 불린다. 중국 진(晉)나라의 황제 무제가 글을 열심히 읽으면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게을리하면 꽃이 피지 않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매화는 특히 불의에 굴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에는 이처럼 숨겨진 상징이 많다. 조선시대 오래된 가옥에 심어진 매화나무를 보노라면 자손이 학문을 잘 닦아 훌륭한 선비를 되기를 기원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진다.

전남 강진군 영랑생가에 핀 모란꽃.




조상이 자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당에 심어 놓은 모란꽃에서도 보인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가 붉고 화려하게 핀 모란을 보고 ‘부귀화(富貴花)’라고 부른 이후, 모란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꽃중의 왕’이라고 불리면서 사랑받아왔다.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고려 국왕들이 궁궐 안에 핀 모란을 감상하며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다는 기록들이 다수 실려 있다. 또 4월 중하순쯤에는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면 흐드러지게 핀 모란을 구경할 수 있다.

왕실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아온 모란은 꽃말인 ‘부귀’가 말해주듯이, 자손이 출세해 풍요로운 삶을 살고 명예까지 누리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꽃이었다. 풍수에서도 모란꽃의 붉은 색깔은 재물과 번창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중국인들이 유독 붉은 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8월 경에 노란빛이 감도는 백색 꽃을 피워내는 회화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상징하는 바는 크다. 회화나무는 궁궐이나 문묘, 정승(장관급) 등을 배출한 고택 등에 많이 심겨졌다. 큰 학자 혹은 큰 인물이 난다고 해서 ‘학자수(學者樹)’로 불렸다. 게다가 회화나무를 가리키는 한자 ‘괴(槐)’가 ‘나무(木)’와 귀신 ‘귀(鬼)’의 합성어여서 ‘귀신 쫓는 나무’로도 유명했다. 즉 회화나무가 있으면 잡스런 기운이 집안에 침범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매화나 모란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주로 대문 밖이나 담장 옆 쪽에 배치했다. 높이가 20m 이상 자라는 회화나무는 자칫 집안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풍수에서는 단독주택의 경우 지붕 높이 이상으로 자라는 나무를 경계한다. 집에서 바라볼 때 앞산이 너무 높으면 집이 ‘치인다’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또 네모반듯한 정원에 큰 나무가 들어서면 한자어로 ‘곤(困·곤란함)’ 자가 형성되므로 불길하다고 보았다.

해남 녹우당의 회화나무.




이는 과학적으로 보아도 설득력이 있다. 큰 나무일수록 땅 속으로 뿌리가 깊게 뻗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나무 뿌리는 땅속을 파헤쳐 가면서 지반의 진동(振動) 파장을 흩뜨려놓을 수 있다는 게 진동 전문가들의 얘기다. 땅의 안정된 파장이 흩어짐으로써 가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풍수적으로는 큰 나무가 뜰 한가운데 있을 경우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집이 아닌 나무에게 빨려들어가 해로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나무와 집의 풍수적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다. 이 책에서는 나무를 잘 심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집의 기운이 좋아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쪽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에는 매화와 대추나무를 심으며, 서쪽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에는 능금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는 내용을 보자. 이는 특정 방위와 궁합이 맞는 나무를 심을 경우 가족들의 삶이 좋아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반면 잘못 심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수목(樹木)이 집을 등지고 서 있으면 흉하고, 큰 나무가 마루 앞에 있으면 질병이 끊이지 않으며, 집의 뜰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으면 한 달 내에 재물이 흩어지는 등 재앙이 생긴다고 한다.

마당에 나무나 화초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산림경제’ 정도는 생활실용서로 참고해보길 권한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