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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같다”는 중-러 관계에 미묘한 균열 [특파원칼럼/김기용]

입력 | 2023-02-28 03:00:00

中 ‘러시아 지역명에 옛 중국명 병기’
불평등조약으로 ‘뺏긴 땅’ 인식 커져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과 러시아는 본래 앙숙이다. 약 4200㎞에 달하는 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으로 공통점이 거의 없는 데다 외모도 아주 다르다 보니 각별히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교류보다는 투쟁과 반목의 역사가 길었다. 특히 국경과 영토를 둘러싼 다툼은 치열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163년 전인 1860년까지는 중국 영토였다. 러시아가 국력이 쇠락한 중국을 압박해 빼앗아 간 것이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에 승리한 영국은 난징조약(1842년)을 맺고 홍콩을 앗아 갔다. 18년 후인 1860년 2차 아편전쟁 끝에 러시아도 중국과 베이징조약을 맺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해 중국의 극동 영토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중국으로서는 치욕의 역사다.

두 나라에서 모두 공산주의 정부가 등장한 이후에도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공산주의 이념 갈등이 먼저 터졌다. 중국은 러시아를 수정주의라고, 러시아는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맹비난했다. 이념 갈등은 국경 전쟁으로까지 비화했다. 1969년 3월 양국은 헤이룽장성 우수리강(러시아명 아무르강) 중류 작은 섬 전바오다오(珍寶島·러시아명 다만스키섬) 영유권을 각각 주장하며 전쟁을 시작했다. 양측 국경 수비대 간 주먹질로 시작된 싸움은 탱크와 다연장 로켓까지 동원된 전투로 확대됐다. 러시아는 중국에 핵 공격 계획까지 세울 정도였다. 그해 9월 확전을 막기 위한 양국의 노력으로 국경 분쟁은 애매한 형태로 중지됐다. 이후 2001년 20년 기한 중-러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21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이 조약을 5년 더 연장했다. 그래 봐야 3년 뒤인 2026년까지다.

시 주석에게 중-러 관계는 ‘자기모순’이자 ‘시한폭탄’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는 시 주석은 청나라 말 치욕의 역사를 원상 복귀시키려는 소명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서 50년간 일국양제를 시행하겠다고 한 약속을 뒤집고 홍콩의 중국화를 밀어붙인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청나라 말 대표적 불평등 조약인 베이징조약도 시 주석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당시 뺏긴 블라디보스토크도 언젠가는 회복해야 할 실지(失地)로 여길 수 있다.

중국 당국은 25일 지도 제작 규범을 발표하고 중-러 국경 8개 러시아 지역 이름에 옛 중국 명칭을 추가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중국 지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옆에 ‘하이선와이(海參崴)’ ‘하바롭스크’ 옆에는 ‘보리(伯力)’라는 중국 지명이 반드시 표기돼야 한다.

지도에서 지명을 어떻게 표기하느냐는 국가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동해’ 대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에 격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지명에 1860년 베이징조약 이전 중국 명칭을 병기하도록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던 중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을 제안했다. 수백 년간 러시아의 앙숙이던 중국이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다. 중국 외교의 실질적 사령탑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22일 러시아를 방문해 “중-러 관계는 태산같이 굳건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역명에 중국 옛 명칭을 같이 쓰라는 지침은 이 말을 공허하게 들리게 한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