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 경영권 분쟁
《최근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사태에 대해 연예계에선 ‘드라마로 만들 딱 좋은 아이템’이란 얘기가 나온다. 화려한 연예계의 스타 기업에서 최대 주주의 오너 리스크가 불거지자 최대 주주의 심복이었던 경영진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 최대 주주를 몰아내려고 시도했고, 위기에 빠진 최대 주주는 업계의 라이벌 회사에 지분을 팔아 최후의 반격을 시도하고 결국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하게 된다는 스토리. 배신과 음모, 반격과 반전 등 전형적인 장르 드라마의 구성이라는 것이다. 에스엠 사태가 드라마틱한 것은 그만큼 K팝 기업의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음을 의미한다.》
● 에스엠과 이수만
‘핑크블러드’는 SM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로고색이 핑크인 것에 빗대 에스엠의 독특한 노래풍과 가사, 문화를 지칭한다. 열성 팬들은 “내 몸엔 분홍 피가 흐른다”고 할 정도다. 1995년 설립된 에스엠은 ‘이수만에 의한, 이수만의’ 회사였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모든 그룹마다 이름을 직접 지었고, 스토리를 입힐 세계관을 부여했으며 발표 곡의 콘셉트를 정했다. 해외 작곡가들을 영입해 곡을 만들게 해서 K팝의 다양성을 배가했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 진출에도 앞장섰다. 이 전 총괄의 행보는 한국 가요시장을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재편시켰고, 이후 모든 K팝의 원형이 됐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하이브는 (이수만) 선배님께서 개척하고 닦아 오신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주셔서 꽃길만 걸었다”고 말한 것은 인사치레만은 아니다.● 하이브냐, 카카오냐…엇갈리는 우려와 긍정의 시선들
하이브 인수에 대해 에스엠 내부는 부정적이다. 이미 임직원 85%가 인수 반대를 표명했다. 에스엠이 K팝의 종갓집이란 자부심이 있는데 갑자기 신흥 부자가 안방을 차지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에스엠의 ‘핑크블러드’가 유지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예기획사의 한 임원은 “이수만뿐 아니라 이성수 대표 등 현 경영진이 선곡과 제작에 깊이 관여했는데 이들이 빠지면 아무래도 음악적 색깔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에스엠의 내부 반발을 막기 위해 ‘창작물의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이브가 에스엠을 인수하면 국내 시장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가 등장한다며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반면 시야를 글로벌 시장으로 돌리면 하이브-에스엠 연합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하이브는 BTS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 등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 세계적 팝 가수가 소속된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해 외연을 넓혔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에서 강세였던 에스엠이 합류하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팬덤 망을 갖게 된다. 하이브가 에스엠 인수 후 유니버설, 소니, 워너뮤직 등 세계 3대 메이저 업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선언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카카오가 이번 사태 이전부터 에스엠 인수에 뛰어든 것은 사실 팬 플랫폼 때문이다. 팬 플랫폼은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자 굿즈 등 2차 지식재산권(IP)을 판매하는 통로로 매출과 수익이 해마다 급증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하이브가 운영하는 팬 플랫폼 ‘위버스’에 네이버는 4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블랙핑크 등 YG 소속까지 속한 위버스의 월간 이용자는 2022년 3분기(7∼9월) 기준 840만 명에 이르고 누적 매출은 2212억 원에 달했다. 카카오는 이에 대한 대항마로 에스엠 자회사 디어유가 운영하는 팬 플랫폼 ‘버블’을 원했다. 에스엠과 JYP 소속 가수들이 있는 버블은 유료 구독자 120만 명에 지난해 매출이 490억 원으로 위버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네이버를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무기가 된다. 카카오 입장에선 하이브의 에스엠 인수로 위버스와 버블이 합쳐지면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뒤질 수 있다.
● K팝의 전환점
에스엠 등 국내 K팝 기업들은 1명의 뛰어난 프로듀서가 모든 과정을 도맡아 키워냈다. 하지만 기업의 시가총액이 조 단위를 넘어가면서 몸집은 커졌는데 경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 1인 지배 방식의 폐해가 드러난 것이다. 에스엠의 경우 이 전 총괄을 ‘선생님’으로 부르며 거스를 수 없는 문화가 있어 라이크기획 같은 일들이 벌어져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일본 아이돌그룹을 탄생시킨 기획사 ‘자니스’도 창립자의 오랜 1인 체제 속에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다가 자니가 세상을 뜨자 휘청이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의 투명화와 함께 프로듀싱, 즉 제작의 다양화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JYP는 2017년부터 1인 프로듀싱 체제에서 탈피해 독자적으로 음악과 콘텐츠를 만드는 5개의 ‘멀티 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 이후 창립자인 박진영 이사에 대한 의존도가 줄었다는 평가와 함께 5년 만에 매출이 230%, 시총이 3배 늘었다. 하이브도 멀티 레이블 체제를 운영하고, 에스엠도 ‘SM 3.0’에서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형식적으로만 분리해 실질적으론 1인 체제가 되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