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주인들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세입자가 제일 무섭다”고들 한다. 임대차 3법에 따라 전세계약을 갱신한 세입자는 언제라도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셋값은 갈수록 떨어져 제값 내고 들어올 사람을 찾기 힘드니 세입자의 변심이 두렵다. 반대로 세입자들은 흉흉한 전세사기 소식에 ‘우리 집주인은 전세금을 돌려줄 여력이 있나’ 걱정이 앞선다. 부동산 시장엔 불신이 커지고 있다.
▷매매가격보다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불신의 ‘역전세난’은 심화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50%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1.23%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아파트 가격조사 방식을 바꿔 이전 통계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순 수치만 놓고 보면 2012년 2월(51.16%)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다. 규제지역인 강남 3구와 용산구는 이미 전세가율이 50% 밑으로 내려간 상태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동반 하락, 그것도 전세가격이 더 떨어지는 현상은 보기 드물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나 잠시 나타났었다. 일반적으론 매매가격이 하락하면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매매 대신 전세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면서 전세가격이 오른다. 그러다가 전세가율이 일정 수준으로 상승하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면서 집값을 끌어올리곤 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집값과 전세금은 오른다’는 ‘갭투자’ 불패의 믿음은 깨졌다. 문제는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도 흔들리면서 주택시장의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이다. 2021년 고점에서 체결한 전세 계약의 만기가 도래하는 올해에 본격적으로 역전세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토연구원은 매매가격이 20% 하락하면 전세 끼고 구입한 주택 중 40%가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집값 거품은 빼면서도 전세금 급락이 자칫 중산층 주거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